요즘 광고나 TV 쇼를 보면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이 날로 기발해지고 현란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볼 때마다 희한한 새 모습으로 나타나 이목을 끌고 아이들의 화제거리가 된다. 머리를 저렇게 손질하려면 시간도 꽤 걸리겠다 싶은데 어떤 머리는 2시간 손질해서 20분 보여주는 머리라고 한다.
모두들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려 모양과 색채를 이리저리 바꾸고 치장하며 자극을 주려고 안달이다.
나 역시 자른 뒤 한 달쯤 지나면 어김없이 다시 길어져 뻗치기 시작하는 머리 때문에 심란해진다. 퍼머를 할까 말까, 길러 볼까 자를까 망설이다가 마음이 흩어진다. 그럴 때면 몇 해 전, 프랑스 리지외에 있는 데레사의 생가를 찾아갔을 때 사진에서 보았던 소화 데레사 성녀의 아름다운 머리칼이 떠오른다. 데레사가 가르멜의 수녀가 되면서 잘랐던 그 머리칼은 가르멜성당의 기념관에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데 순정만화 여주인공의 머리처럼 그렇게 숱많고 길고 곱슬거리는 아름다운 머리칼이었다. 가르멜의 수녀들이 언제나 모두들 쓰고 있던 검은 수건과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뇌리에 깊이 새겨지게 되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저울질 해주는 것이었다.
「키스하고 싶은 머리결」이니 「내 여인의 향기」라는 샴푸 광고가 말해주듯 여인의 풍성한 머리칼은 이 세상의 욕망과 아름다움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데레사에게 아름다운 머리칼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자만심을 갖게 하는 걸림돌이었다. 이미 천상의 행복에 비해 지상의 행복은 한낱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아쉬움 없이 머리를 자를 수 있었을 것이다. 본질보다 겉모습이, 성찰보다 감각이, 영원보다 현재가 중요시되는 요즘의 세태 속에서 오늘로부터 꼭 1백년 전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간 소화 데레사 성녀의 영원을 향한 투철한 그리움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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