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조금만 일찍 돌아와도 「공부는 안하고 왜 이렇게 일찍 왔느냐?」하시면서 무조건 나무란단다.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어도 엄마 등살에 못 들어가.』 시내버스 안에서 한 여고생이 친구와 나누던 이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청소년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자녀가 저녁 시간에 집에 있는 것을 낯설어 하는 것이 우리나라 가정생활의 한 모습이 되어 가고 있다.
청소년이 있는 가정에서 자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가족이 얼마나 될까? 주변의 가정들만 보아도 청소년 자녀들과 밥상을 같이 하는 경우가 드물다. 야간자습이나 학원 공부로 저녁 시간을 집 밖에서 보내야 되는 자녀들 때문에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 부담이 줄었다고 반가워하는 어머니들이 있는가 하면, 그 시간이 되면 할 일이 없어 멍하니 있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가정에서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물으며 우울해 하는 중년의 여성들도 적지 않다.
식사를 같이 하기 힘든 가족들은 얼굴을 마주 보며 자신들의 문제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당연히 그만큼 부족하다.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마련해 주신 밥상에서 모성의 영양분을 얻는 기회가 사라지고 있음을 우리는 별 의식 없이 받아들인다.
자녀를 집 밖으로 몰아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제도 때문이라고 한다. 여성권리가 세계에서 하위 수준인 것도 제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 행하는 책임도 제도에 맞추어야 한다면 우리는 언제 우리의 삶에 주인이 될 수 있을까.
가정마다 어머니의 고유한 음식 맛을 자랑으로 삼던 시절은 20세기에 묻어두고 가야할 형편이다. 끝 없이 이어지는 「먹자거리」가 도시의 밤을 밝히고 분식점들이 학교 골목마다 빽빽히 들어서 어머니의 손맛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애정과 사랑으로 미래를 맞이하도록 할 수 있을까?
가족이 함께하는 밥상에서 정신적, 육체적 힘이 자라남을 요즈음 청소년들은 체험하기 힘들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한 습관이 없는 사회에서는 가정의 붕괴를 막기 어렵다. 공동의 밥상이 없는 곳에 「우리」라는 의식도 부재하게 된다.
대풍인 이 가을에 가족을 위해 풍요로운 식탁을 마련하여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할 때 자녀들은 잊었던 따스함의 원천을 기억할 것이다. 따뜻한 밥상을 준비하는 것이 어머니의 즐거운 의무요 권리라고 하면 시대착오적인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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