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며 못하게 하니까 무당집에 가서 과천산, 청계산, 소요산 등을 다니면서 굿을 하고 아내는 무관을 선다면서 무당옷을 입고 굿장단에 맞춰 키 높이보다 더 뛰기 시작했다. 난 앞이 캄캄하여 말하면 아내는 이혼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날뛰고 덤비던 아내가 자꾸 빈혈이 온다고 쓰러지더니 이젠 큰 병을 얻은 것 같다.
처음엔 2개월에 한 번 정도, 차츰 횟수가 잦아지면서 1주일에 한 번, 하루에도 두세 번 쓰러지더니 급기야 청량리에 있는 성 바오로병원에 입원을 했다. 이것 저것 수 없이 검사하더니 백혈병이란다. 난 그것이 처음 듣는 병이라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몰랐다. 좀 입원하면 낳으려니 했는데 1주일, 한 달, 이젠 기약 없는 병원살이가 시작되고 나니 어린 아이들은 처 할머니께 맡기고 난 병원에서 살아야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입원했어도 치료는 커녕 병세가 점점 더한 것 같았다. 그렇게 미신을 믿고 점치러 굿하러 다니더니 이젠 이런 것도 모르고 의사 주사약만 복용할뿐 말 없이 누워 핏기 없는 얼굴이 마냥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죽지는 않아야 할 터인데 하는 생각으로 정성껏 간호했고 조직검사도 했다. 앙상하리만치 깡마른체 퀭하니 뚫린 눈을 보니 더 불쌍해 견딜 수가 없었다. 지나치게 허약해지니 여러가지 합병증이 와 물만 마셔도 토해냈다.
병원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당시는 의료보험도 없었으니 말이다. 퇴원 입원을 수없이 거듭하면서 몸이 다시 건강해 진다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했고 여기가 좋다 저기가 잘 한다는 용한 의사를 찾아다니면서 아내의 지친 몸을 보니 좀처럼 건강을 찾을 것 같지 않았다. 건강을 찾기 이전에 꼭 죽을 것만 같았다. 이름 있다는 병원 거의 다 다니고 이젠 병원비 때문에 집까지 팔았으니 어쩔 수 없이 집에 데리고 오는 내 가슴은 미어질 것 같았고 차라리 내가 받는 고통이 다 쉬울 것 같았다. 처 할머니의 성화에 마지막 길이 될지 모르니 굿이나 한 번 하자고 해서 승낙했다. 무당 일곱 명이 오고 대작두라는 큰 굿이었다. 3박 4일 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마지막 굿판에서 혼자서는 서지도 앉지도 못하던 아내가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더니 그대로 쓰러지니까 무당들은 부정 탔다면서 뒤도 안돌아 보고 도망치듯 가 버렸다. 다시 아내를 들쳐 업고 병원을 갔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처의 오랜 병으로 가정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나도 너무 힘들어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내가 버티어야만 우리 가정이 바로 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억지로 지탱하자니 죽지 못해 사는 삶이었기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내는 이제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치료비 마련을 위해 집을 팔고, 부엌도 없는 방 한 칸 사글세 집을 얻어 이사했다. 처의 병간호를 위해 제대한 나는 살길이 막막하여 예비군 중대장을 하며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다. 할 수 없이 아내를 데리고 강원도 문막의 친구집이 비어 있는 곳에 가서 살기로 하고 아이들은 처 할머니께 맡기고 내 처만 데리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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