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떠난 지 10년이면 그리는 정도 얼마쯤 가시는 게 세상 인정인데 여전히 변함없이 쌓이는 것은 그만큼 남긴 업적이며 심은 정(영향력)이 컸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존경해 따르던 호세 이해남 박사가 지난 87년 11월 12일 간암으로 가신 지 10돌이 돼온다. 평소에 그토록 전심으로 받들고 섬기던 주의 품에 돌아가셔서 영복 누리실 것을 의심치 않는다. 뒤에 남은 우리들은 『망자 평안!』을 빌기보다 오히려『우리 위해 빌으소서』 의 전구를 청할 입장이다.
이해남 박사 하면 한국의 저명한 석학이요, 영문학자, 사학가며 문필가로서 두드러진 봉우리 중 한 분이다.
학업은 서울고등학교의 전신인 경성공립중학교(1929)를 비롯,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 영문과(34년), 히로시마문리대 사학과(37년)를 졸업, 교육자로서는 평남시학(장학관, 평양상업, 평고 교사, 37년), 평양서문고녀(43년), 경성사범(현 사범대학) 교수 겸 총독부 시학관(45년), 청주제일중학교장(46년), 성신대학(현 서울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경북대학교 사대 교수(52년), 한국외국어대학 교수(54년),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61년) 동대학교 교학처장(63년), 동대학교 총장(72년).
문학가로서의 이박사는 21세 때 쓴 단막극 「마장」이 이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2등 입상, 22세 때 쓴 「뒤집혀진 3각형」(단막극)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3등 입상, 23세 때 쓴 희곡 「꿈」(1막 4장)과 「서울의 노래」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단독 입상되어 두 가지 상을 한꺼번에 타기도 한 당당한 문학가이다. 그 후 순교사극 「서학란」은 「가톨릭 극집」에 수록됐다.
학자로서 이론가로서의 이박사의 면모는 그분의 저서 16권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학술서적, 사학서적, 종교서적, 수상집 등 문학관련 서적까지 16권의 책을 엮어 냈다면 놀라운 집필력이다.
20여 년 전 70년대 전반기에 캐나다 이민, 나이아가라 근교인 세인 캐터린스에 살며 저술한 마지막 수상집 「다람쥐 쳇바퀴」 (캐나다 한국일보사 발행)도 노익장을 보여주는 건필이었다.
한국 가톨릭계의 지도자로서 장면 박사, 유홍렬(사학가) 교수와 더불어 이해남 박사는 서울대교구의 3두 마차 격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박사의 한국시절 평신도로서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은 「꾸르실료」운동을 한국에 도입한 선각자라는 점이다.
고인이 하느님나라로 가신 지 올해로 10년! 벌써부터 영복소에서 주님과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계실 것을 믿으며, 아직도 사바세계의 질곡에서 헤매는 우리들 친지와 후진을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한 번 더 청하며 그립고 반가운 인사를 줄인다.
1997.10
캐나다 토론토에서 검돌 이석현(서바스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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