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흐를수록 깊어지고, 돌은 깎일수록 고와진다더니, 사람들의 지혜와 아픔이 농익어서 전해지는 각 나라의 속담과 격언 속에는 넉넉한 삶의 진지한 물음들이 있어서 좋다.
체코라는 낯설은 나라의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겨울이 우리에게 묻는 말이 있으리라, 여름에 무엇을 했느냐고…』 이 격언은 한 해를 정리하기에 넉넉한 화두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초 서울교구 주보에 글을 쓰면서 1977년을 이렇게 바랐었다. 『하루에도 몇 잔의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육체를 위해서는 그렇게 늘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워가면서도, 비워진 가슴을 채우기 위해서는 얼마나 노력을 해왔는지… 1997년을 시작하면서 올해는 지난해보다 조금 더 성장할 수 있기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기를, 그래서 새해에는 조금 더 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조금만 더 넓어지기를』 소원했었다.
그런데 벌써 11월이다. 11월! 11월!
11월이 대단한 시간도 아닌데, 이렇게 강조의 문구를 사용한 이유는 나 자신이 위기의식을 가져봤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에 그랬다. 하늘도 메마르지 않은 사람에게만 파란 속살을 보여준다고 하지 않는가!
요즘 너무 무감각해져 있는 나를 만난다. 나뿐 아니라 너를 만나고, 우리를 만난다. 하루하루에 바쁘게 살아갈 뿐 잠시 멈추어 서서 생각하거나, 매듭짓거나, 돌아보지를 않는다. 진지한 반성도 드물어졌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무에 불면 녹색의 바람이 되고, 꽃에 불면 꽃바람이 된다는데…. 생각도 없이 살아가는 나를 스쳐 지나간 바람은 어떤 바람이 되었을까?
위령성월을 보내면서 나에게 묻는다. 『여름에 무엇을 했느냐』고.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권상혁씨게 감사드립니다. 이번 주부터는 최성우 신부님께서 집필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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