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유대교 전통이 말하는 성령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본데 이어, 이번에는 같은 하느님을 신봉하는 유일신교인 회교 사상의 한 단면을 봄으로써 우리의 신앙 이해에 보태보고자 한다.
1) 용어 풀이
「영」이라는 낱말의 아람말 표현은 히브리말의 루아흐에 가까운 「루흐」이다. 이 낱말의 뿌리(RWII)는 여러 가지 아람말과 닮은 의미를 포함한다. 숨결, 바람, 쉼, 영, 영성 등이 그것이다.
또 하나의 좀 더 물적인 뜻을 띤 다른 어근(히브리말 네페슈와 가까운 NFS)으로도 옮길 수 이으나, 그것은 덜 중요한 말이다. 여기서는 「루흐」라는 말의 쓰임새를 살펴보기로 한다.
회교의 경전 「꾸란」에 보면 루흐라는 말이 24차례 나오는데 거기에는 아래 보기에서처럼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 아담의 창조:
그리고 주님께서는 천사들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나는 이제 흙으로 빚은 죽을 운명의 존재를 만드노라.
그의 꼴에 갖추어 내 영을 그 안에 불어넣으며,
너희는 엎드려 그를 경배하여라』(15,28~29).
-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였을 때에도 영을 불어 넣으셨다:
순결을 지킨 그녀에게
우리는 우리 영으로 숨을 불어넣어
그녀와 그녀의 아들을 온 누리에게 표징으로 세웠노라(21, 91: 66, 12)
- 예수 자신이 영과 직접 이어지다:
메시아, 곧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하느님의 사자이었을 뿐이며,
마리아에게 맡기신 하느님의 말씀이자 하느님에게서 나온 영이었다(4, 171).
우리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에게 뚜렷한 표시를 주었고, 그를 성령으로써 확인해 주었다(2, 87).
여기서 「성령」이라고 옮긴 말은 「루흐 알 꾸드스」로, 「거룩함의 영」이라고 옮기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같은 표현이 다른 데(2, 253)에서도 나온다.
끝으로, 「혼」으로도 옮길 수 있는 또 한 구절을 인용해 본다면:
사람들이 영과 관하여 물어 보면 이렇게 말하라:
『영은 나의 주님의 감도(感道)로 계시다』고(17, 85).
2) 회교의 영적 전통
고전적 회교 신학은 영에 관하여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반면 쑤피 전승(회교 신비주의/자)에서는 영에 관한 언급이 잦다. 그 한 예로 922년에 바그닷에서 십자가에 처형된 알 - 할라즈를 들 수 있다.
님의 영은, 마치 술이 맑은 물과 섞이듯,
나의 영과 하나로 어우러졌도다.
그러므로 님과 상관되는 것이라면 나와도 상관되나이다.
모든 것에 있어서 「님」과 「나」는 오직 하나이니.
(맛씨뇽 지음 「할라즈의 수난」, Ⅲ, 49쪽에서)
할라즈의 재판과 단죄에서 볼 수 있듯 위와 같은 사상은 회교 전통교리가 용납하지 않는 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사상은 회교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영적인 흐름을 꾸준히 이루어 나갔다.
그 좋은 증거로 현대의 샤이크 아흐멧 알라위(1869~1934)의 시 한 수를 들 수 있다. 그는 지중해 양편에 영향을 끼친 알라위야 동맹이라는 것을 창립한 지도자였다. 할라즈와도 비슷하게, 「포도주」라는 제목의 이 시에서 작가는 영과 취하는 술을 하나로 묶고 있다.
벗들이여, 그대들이 나의 경지를 알았다면
길은 앞으로 트여 있네, 나만 따르게,
여기 더는 의혹도 없고 환상도 없으니.
나는 하느님을 안다네,
감추이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한 앎으로써
나는 안다네.
나는 사랑의 잔을 마셨다네, 그리고 차지했다네,
그 잔이 영원히 나의 몫이 되도록
내게 하느님의 비밀을 넘치게 전한 이는 복받으라.
저 비밀을 끼치는 일, 그것이야말로 행 중의 행이니.
나는 한동안 진리를 감추고 잘도 가리었었네.
누구든 하느님의 저 비밀을 지키는 자는 상을 탈 것일세.
모는 것을 베푸시는 분이
내가 그 비밀을 두루 알리도록 허락하셨을 때도
그분은 - 어떻게인지는 모르겠으나 - 내가 영혼들을 맑힐 수 있도록
굳셈과 참됨과 섬김의 칼을 내게 채워주시고는 힘을 주시고
술 취한 자가 더욱 더 취하려 하듯이
술 마시는 자는 누구나 늘 마셔야만 하는
어떤 포도주를 내게 주셨다네.
그래서 나는 그 술을 따르게 되었으니,
아니, 내가 짜내게 되었으니 ?
오늘날 또 누가 그 술을 따르던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지들 말게.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당신이 은총을 베푸실 사람을
그 누구든 당신 뜻대로 택하시어 넘치도록 베푸신다고.
그게 바로 하느님의 은총이라네,
뜻하시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것이.
주님은 가이없는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받으소서!
주님, 사랑받는 분의 영으로, 당신의 영으로,
거룩함의 영으로 저를 도우시어
제 할 바를 잘 하도록 제 혀를 풀어 주소서.
주님을 진정 돕는 이들 가운데
누구 하나든 제 짐을 덜게 하시어
저 모임의 날에, 주님, 저를 부끄리지 마소서.
비밀의 집에서 사랑받는 분의 영광 함께 하시고
평화로 그를 맞아 주시고 복되다 하시며
찬양하고 들어 높이소서.
(마르틴 링스 지음, 「20세기의 한 회교도 성인」에서, 런던1961)
박닷에서 살다가 1428년에 별세한 또 하나의 쑤피. 압드 알-카림은 완인(完人)에 관한 역저를 썼는데, 그것은 예언자 무함맛(회교의 창시자, 하느님의 유일하고 최종적인 예언자로 여김)과 신비스런 관계에 놓인 본래 인류를 논한 것이었다. 그의 이 글은 후대의 회교 신비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인간은 신과 자연을 잇는 연결고리이다. 인간은 누구나 완전한 신의 모상 그대로이다. 그 누구도 완인이 될 힘을 지니지 않은 자는 없다. 인간의 이러한 본래 완전성을 입증해주는 것은 성령이다. 영이야말로 인간의 참 본연이며 바로 인간 안에 신적인 영의 비밀 성소가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람 안으로 내려 오셨듯이 사람 또한 하느님께로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완인에 있어 진정 거룩한 자, 절대성에서 내려 왔던 저 절대자가 다시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끝으로, 파키스탄의 건국 공로자의 하나로 꼽히는 무함멧 익발(1873~1938)이 지은「자빗 나마」라는 우리 시대의 증언 중 한마디를 들어보기로 한다.
우리는 당신을 찾사오나 당신은 보이지 않으시나이다.
아니, 제가 잘못 알았나이다 - 우리는 눈이 멀었고 당신은 가까이 계시나이다.
신비의 이 너울을 거두어 주시던가
아니면 이 눈먼 영혼을 당신께로 낚아채소서.
제 마음의 대추나무는 잎도 열매도 맺지 못하오니
도끼로 찍으시던가 아니면 새벽의 소슬바람을 보내소서.
제게 명오를 주셨으니 광기도 주시어
내심의 황홀경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소서.
많은 생각 안에 자리하오나
사랑은 깨어 있는 마음 안에 자리 하나이다.
앎에 사랑이 조금도 없으면 그것은 한갓
생각을 늘어놓은 것일 뿐.
성령 없는 앎이란 그저 환상일 뿐인 것을.
(아르베리 옮김, 「자빗 나마」, 1966, 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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