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인사고과(人事考課)를 시행했다. 먼저 각 사람은 ‘자기신고서’를 썼는데, 거기에는 탁월, 우수, 보통, 미흡, 부족 중 하나에 표시하는 난이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의 내면은 ‘탁월’ 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세상의 그 누구보다 더 탁월한가?’라는 또 다른 내면의 소리에 움찔해졌다.
자기신고서는 상급자 ‘참고용’이지 ‘평가서’가 아니다. 더구나 나의 상사는 나에 대해 알고 있고, 내가 무얼 어떻게 쓴다 하여 그것에 좌우될 분도 아니다. 게다가 현직에 만족하는 나는 부서 이동이나 승진을 바라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에 신경이 쓰였다. 부서원들의 자기신고서를 받아보니, 그들도 대부분 나와 비슷하게 자신을 평가했다.
이 자기신고서에는 객관적 기준이 없다. 자기 평가에 영향을 주는 게 있다면, ‘자기 이상의 높이’와 ‘자신에 대한 앎(知己)’일 것이다. 자기 기대치가 높은 사람은 자기가 한 일이 마음에 차지 않을 것이요, 낮은 사람은 작은 일 하나만으로도 차고 넘치게 느껴질 테니 말이다.
내가 자신을 높이 평가하려 했던 것은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는 아니다. 통상적으로 나는 내가 한 일에 만족할 수가 없다. 다른 이들이 한 일 역시 좀처럼 만족스럽지가 않다. 자타(自他)에 대한 기대치와 이상이 너무 높아, 그런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날마다 느끼는 번뇌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자신을 높이 평가하려 했던 것은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가 그 기회에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른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자신에게 묻는다. “그렇게 인정받고 싶었니? 너, 아직도 거기서 헤매고 있니?” 이런 자신에게 한심스러운 연민의 정을 느낀다. 한 부서원의 자기 평가를 보고 내가 허허(虛虛)롭게 웃었던 것처럼, 하느님도 나의 자기평가를 보시고 그렇게 웃으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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