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서울시에서「정도 6백주년」을 기념해 타임캡슐을 묻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타임캡슐이 생소한 개념이었지만, 그 후부터 신문 보도를 통해 종종 보게 됐다.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졸업식 전에 6학년 친구들끼리 타임캡슐을 묻기도 했다고 한다.
만약『올 한해, 나의 삶을 타임캡슐에 담는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니 부끄러움이 앞선다. 올해도 역시 나의 삶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의 후반부에 나는 소중한 것을 잃기도 했었다. 바로 웃음을 잃었던 것이다. 웃음을 잃는다는 것! 그것은 삶의 여유를 잃는다는 것이고, 희망의 자리를 잃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각박해졌다는 뜻일 것이다.
한때 나는 웃음이 바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일에 시달리고 사람들에게 지치게 되면서부터 날카로워지고 메마르게 되었다. 「조금만 더 성숙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이제야 들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것이 사람이 성장해가는 과정이라고 자위도 해보지만, 부끄럽기는 매 한가지이다. 하지만 올해도 역시 이러한 힘겨움을 통해서 어제보다 더 나은 내 자신을 만나게 해주셨다는 사실 때문에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된다.
1997년! 나의 타임캡슐을 묻게 된다면 나는 나의 부족하고 못난 부분들을 담아서 보관하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 하느님 면전에 서게 될 때, 『1997년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대답하고 싶기 때문이다.
1997년! 돌아보면 부끄럽고 부족한 점도 많지만 그래도 역시 성장했고 조금은 나아졌다. 내일을 위한 새로운 각오를 다지면서, 우리 국민들도 IMF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기 예수님이 오시는 기쁜 성탄절, 구유 안에 나의 못나고 부끄러운 1997년을 묻는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