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996년은 유엔이 제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해」이다.
사실 「빈곤」문제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57억 명의 인류 중 45억이 먹거리에 대한 걱정을 풀지 못하고 있으며 해마다 1천8백만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명시대에도 인류의 20% 남짓한 12억 정도가 「먹고 사는」문제로부터 해방되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있을 뿐이다.
유엔이 96년을 「빈곤퇴치의 해」로 결정한 것은 선진국이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의 그늘에서 시간마다 28명꼴로 인간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이 엄청난 현실을 인류 최대의 현안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빈곤」문제에 대한 우리 국내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해 대홍수 등 자연재해로 인한 북녘 동포들의 극심한 굶주림은 차치하고라도 「세계화」 구호 속에 일취월장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만 절대적 빈곤계층이 2백만 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 일부 계층에선 「먹는 문제」는 이제 남의 일인 듯 흥청대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현상은 날품팔이로, 행상으로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며 연명해가는 절대적 빈곤계층이 거의 없는 줄로만 생각하고 있는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매스컴의 중산층 위주의 보도에 중독되어 살고 있는지 모른다.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신형차, 자고 나면 쑥쑥 솟아오르는 호화 빌딩, 거리를 주름잡는 패션파 그리고 날로 늘어나는 화려한 외식 업체만을 바라보면서 이 사회에 빈민이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 곧 매스컴을 통한 일반적 착각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현실을 볼 때 우리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기보다도 잘 사는 사람, 교육을 더 받은 사람,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끝으로 교황의 92년도 평화의 날 메시지를 재음미해보면서 빈곤퇴치의 해를 살아가는 지표로 삼도록 하자.
『그리스도의 가난은 거저 주며, 온화하며, 헌신적입니다. 이 같은 가난을 생활화하는 사회는 다른 이들이 최소한의 삶이라도 영위할 수 있도록 스스로 적게 소유하며 다른 이와 더불어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는 궁극적으로 평화를 추구하며 평화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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