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는 이른바 양자신학 (Quantum theology) 중세기에 무르익었던 신비주의적 신학이 담당했던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이 신학은 20세기에 가장 흥미롭고 도전적인 발견들로부터 그 명칭과 영감을 얻는데 이름하여 비롯된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 이론은 우리가 느끼는「경험의 덩어리」가 생기 없고 둔한 물건이 아니라 살아있는 에너지이며 단편적이 아닌 전체적으로 경험 한다고 주장한다.
양자신학 이전에 과학자들은 원자를 쪼개고 이를 다시 강력한 입자 가속기에 넣어 후려갈겨 조각 조각 내는 등 존재의 기본 구성체를 캐내는데 몰두했었다. 이는 결국 쿼크(quarks)의 발견으로 이어졌는데 지금까지 쿼크를 깨뜨리는데 성공한 사람은 없다. 쿼크를 깨뜨리려는 시도는 실패했지만 이 사실은 모든 물질의 구성요소가 되는 기본구성체 혹은 실체를 발견했음을 지시하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쿼크는 실체가 아니다. 어느 누구라도 쿼크를 본적이 없으며 과학자들도 이것이 물체가 아니라 파동과 같은 에너지라는 데 동의한다. 게다가 쿼크를 분리시키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쿼크는 2개조 혹은 3개조의 형태로 연구되고 이해된다. 이 모든 사실은 궁극적으로 우리 세계가 에너지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듯 하다.
그러면 이런 과학이론과 신학이 어떤 연관이 있는가? 과학과 종교 사이의 오래된 이원론적 양분법은 대부분의 신학자들을 어둠 속에 가두어 놓았고 과학자들 역시 기계론적 세계관에 굴복하여 이원자 입자의 신비로운 발견들을 망가뜨리고 죽이고 파괴하여 우리 행성의 신성을 빼앗는데 도구로 이용되었다.
양자신학은 새로운 신학적 의제를 제시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생명은「살아있음」대「죽어 있음」, 「자연」대「인공」, 「정신」과「물질」로 나누는 과거의 이분법적 범주는 인간 마음의 구조물이며 실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양자신학에서는 무신론보다 우상숭배가 더 큰 죄가 된다. 우상숭배는 신이 아닌 무엇을, 누군가를 숭배하여 인간의 혹은 세상의 힘을 신의 것인 양 간주하게 된다. 돈과 권력의 힘은 우리 시대의 주요 우상에 속한다. 그러나 이와 똑같이 왜곡되고 있는 것은 신이 우리 인간의 욕구에 맞게끔 제도종교가 만들어내고 체계화 하는 것이다.
양자신학에서는 절대적 가치가 없다. 이것은 우리의 세계관을 뒤집어 놓지만 오히려 신에 대한 겸손과 종교간의 대화가 더욱 촉진될 수도 있다. 특히 동양의 신비주의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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