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지인 한 분이 직접 경험했던 일화 한 토막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가족들의 성화에 못이겨 「괌」이란 곳으로 휴가를 떠났을때 겪었다는 작은 에피소드였다. 다음은 그가 들려준 작은 에피소드의 간추린 내용.
다행스럽게도 그 지역에 살고있는 먼 친척 덕분으로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괌을 여행했던 그는 하루를 잡아 「옵션」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특별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정글탐험」이라고 하는 그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가족당 수백불이라는 거금을 투자한 그는 별로 재미도 없는 그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아주 흥미로운, 그러나 가슴아린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수백여 명의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뒤섞여 참여하고 있었던 그 프로그램은 마침 끝나는 시간에 맞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본부석 천막안으로 모여들었고 돌아가는 버스좌석을 배정받는 시간이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천막안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시간, 한국인들의 인내에 한계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 용케도 본부석을 향해 왼편쪽에 몰려 앉아있던 한국 사람들은 「버스 배정을 빨리 해달라」는 특권아닌 특권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여행사를 중심으로 모객되어 온 여행객들이라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또 비가 쏟아지고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인 상황속에서 한국사람들은 서로 먼저 가겠다고 「생 떼」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떼라는 것은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본부석에서 한국 안내원이 00여행사에서 온 사람들을 호명하면서 먼저 승차하라고 하자 다른 한국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왜 그 여행사가 먼저 호명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큰 여행사에서부터 작은 여행사에 이르기까지 십여 개가 넘는 여행사에서 모집되어 온 상황이라 십여 가지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십여 가지 목소리가 난리를 치다보니 호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안내인의 호명은 사람들의 큰 소리속에 사라져버리고 이를 반복하다 보니 2시간이라는 「세월」이 훌쩍 넘어버렸다. 아수라장을 벌이며 승강이를 하던 한국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리자 본부석 천막안은 일순 고요와 정적이 감돌았다.
본부석에는 개별적으로 신청했던터라 「다행히」 호명을 당하지 않았던 그 지인과 가족들, 그리고 또 한 무리의 사람들만이 남게 되었다. 천막을 향해 오른편으로 몰려 앉아있던 그 사람들은 일본인들이었다. 한국사람들이 난리법석을 치는 동안 까맣게 잊혀져 있던 그들은 다름아닌 일본사람들이었다.
숨을 죽이고 앉아있던 그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비로소 호명을 하기 시작했다. 2백명이 넘는 무리가 앉아있는 자리라고 보기엔 우리 상식으론 이해가 안 갈만큼 있는듯 마는듯 앉아있던 그 사람들은 안내인의 호명에 따라 한 손은 반짝 쳐들면서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하이 하이」하면서. 그 지인은 그들은 마치 유치원의 원아들처럼 어찌나 말을 잘 듣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고 표현했다.
불과 30여 분도 되지않아 일단의 일본사람들은 자기들이 타고 온 버스를 타고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1명이 앉아있듯 그렇게 조용히 앉아있던 것처럼 그들이 떠나간 자리는 허무할 정도로 깨끗했다.
개인 여행이라는 상황때문에 가장 나중에 버스자리가 돌아왔던 그 지인은 그 상황을 놓치지 않고 지켜봤으며 그 작은 경험에 큰 충격을 받은듯 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번도 객관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는 그는 그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의 솔직한, 그러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았다고 고백했다.
최근 아틀란타 올림픽 김치 납품문제를 놓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김치전쟁을 보면서 문득 그 지인의 충격이 되살아났다. 매스콤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내용대로라면 우리는 일본이라는 나라와 김치를 놓고 싸움을 하고 있는 격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김치를 놓고 일본과 싸움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인 것 같지만 외국을 나가보면 그 분위기는 실감이 간다.
「기무치」라는 일본김치가 판을 치고 있는 상황을 여러번 경험했고 그같은 상황이 오늘의 어처구니 없는 현실로 이어질수가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치가 기무치로 둔갑할 수 있는 우려는 이미 오래전에 등장했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당연히 흥분하고 여려가지 대안을 제안하곤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우리가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사이 일본은 김치를 기무치로 둔갑시키고 말지도 모른다. 분명한 역사도 되풀이해서 왜곡하고 있는 그들이 김치를 기무치로 둔갑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또 한번 떠들고 말것이라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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