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 방학때만 되면 아예 한 친구네 집에 가서 살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네 친구들 5∼6명이 고정 멤버였는데 우리집에는 사나흘에 한 번 가서 밥만 먹고 오곤 했다.
우리는 방 둘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고 무협지를 읽다가 바둑도 두고 밤에는 밤새워 노름을 했다. 민화투로 시작해 섰다, 도리짓고 땡, 육백, 포커, 고스톱으로 발전했다. 처음엔 1점에 1원씩 했으나 몇 해 뒤엔 50원까지 올라간 판돈으로는 과자도 사먹고 만화나 무협지를 빌려봤다.
그 생활은 우리가 우연히 그 집에 있던 「정협지」를 본 뒤부터였다. 협(俠)의 매력에 빠진 우리는 늘 다니던 만화방에서 「군협지」를 발견했다. 이런 고전에 이어 싸구려 무협지로 함께 밤을 샜다. 나는 그 방에 있던 「宮本武臟(미야모토 무사시)」, 20권짜리 「대망」도 읽었다. 중국의 「홍루몽」을 본땄다는 「옥루몽」도 있었다. 누군가 구해온 포르노 사진도 봤다.
전쟁 직전에 평양에서 두 분만 함께 내려왔다는 그 친구네 부모는 둘 다 수려한 외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친구네 어머니는 아무런 간섭도 않고 다만 밥 때가 되면 밥상을 차려주었다. 반찬이 없으면 고춧가루가 하나도 없는 평양 물김치만 놓고 서너공기씩 비웠다. 우리는 그분을 그냥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 집에서 가서 살기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나 어머니가 우리집을 다녀갔다. 두 어머니는 서로 만나본 뒤 안심하고 몇 해가 지나도록 우리를 그냥 그렇게 둔 것이다.
둘러보면, 교육자든 종교인이든 모범답안만 내놓는다. 스스로 모범이 되지 못함을 잘 아는 자격지심 때문에 그리 한다면, 그것 또한 결코 모범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자식들이 크기 전에 무협지나 한 질 사다가 서가에 꽂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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