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 항상 텅 빈 공간으로 가슴에 안고 자신의 근원을 찾아 방황하는 영혼, 참 진리이며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어려우며, 참 자아를 실현할 수 없음을 작은 인생을 통해 겸손되이 고백합니다.
일찍이 나의 아버지는 수협 공무원이었으나 재산을 팔아 고향 가까운 진주에서 작은 사업을 벌이셨다. 몇 년 동안 사업은 번창하였고 자녀도 8남매로 불어났다. 어려서부터 형제가 없이 외롭게 자란 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들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우리 어린 가슴에 커다란 포부와 야망으로 가득 부풀게 했다.
이 행복은 얼마가지 않아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산산이 부서지고 우리는 시골로 되돌아가 할아버지께서 일구시던 몇 평 되지 않는 땅으로 겨우 궁핍은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만년 이장으로 자리를 붙이고 더 이상 새로운 일을 하기를 꺼리셨다. 지금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지만 어린 나는 실의에 빠진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어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수고하시는 것은 모두 아버지의 무책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미워했다.
할머니는 아버지 일에 충격이 커셨던지 중풍이 걸려 고생하시다가 4년 만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검소한 농부로 사셨으나, 덕이 높고 인품이 온화해 주위의 존경을 받았으며 내겐 살아 있는 성인처럼 사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홀로 계신 할아버지가 외로울까봐 자주 논밭으로 따라 다녔다. 좀체 말씀이 없는 분이었지만 그분의 얼굴에 있는 온화한 미소와 평화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욕심이 없고 겸손하신 할아버지, 이웃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양보하셨고 스스로 바보가 되셨다. 어린 나는 할아버지 행동에 울고 떼를 부렸으나 마음 속 깊이 존경하였고 닮고자 노력했다.
나의 시골집은 성당과 장로교회가 삼각으로 마주 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독실한 유교집안에 태어났으나 주일이 되면 단정한 차림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러 가는 사람들을 늘 부러운 듯 지켜보았다. 특히 온 가족이 오손도손 다정하게 교회를 향해 가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한번은 부모님께 전도사가 되겠다고 해서 혼이 났고, 아버지께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한숨 짖다가 꾸중을 들었다.
그러나 기회는 주어졌다. 국민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이 성서책을 가지고 계셨다. 쉬는 시간이면 주위를 빙빙 도는 몇몇 꼬마들에게 성서를 읽어주셨고, 때때로 상세하게 설명도 해 주셨는데 너무나 재미있어 매일 매일 졸랐다. 먼 훗날 성장해서 선생님이 통일교인이라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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