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판도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소수의 지배층만이 아닌 대다수의 민간에서도 영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흔히 말하기를 영토의식은 민족주의의 발흥과 함께 출현되는 현상으로 되어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관리들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우리의 영토에 대한 관념을 강화시켜가기 시작했다.
18세기 후반 우리나라에 천주교 신앙이 들어온 이후 19세기 전반기에 이르러서는 서양인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했다. 그리고 서양인 선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은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조선인 천주교 엘리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도 조선의 판도에 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영토의식은 남다른 측면이 있었다. 명확한 지리 인식을 통해서 선교사들은 자신이 선교할 대상이 되는 지역을 확실히 파악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선교지에 대한 선교회간의 분쟁을 사전에 막아보기 위해서 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박해의 과정에서도 조선의 지도를 제작하여 그 판도를 명확히 하고자 했으며, 기존의 지도를 수집하여 소중히 보관해 왔다.
이와 같은 선교상의 목적과 관련하여 한국 천주교회에서 제작했거나 보관하고 있는 지도 가운데 오늘날의 독도문제를 이해하고 이를 바로 잡는데에 도움이 되는 사료들이 일부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김대건 신부의 「조선전도」와 리텔 주교가 작성했던 「조선지도」를 들수 있다. 그리고 현재 한국 교회사 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는 일본 육군성에서 제작한 지도도 독도문제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지도들에 관해서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김대건의 「조선전도」(朝鮮全圖)는 1845년에 작성되었다. 달레가 지은 「한국 천주교회사」의 기록에 의하면 김대건 신부는 서울 한성부(漢城府)의 서고에 보관되어 있는 지도를 참조하여 조선전도를 제작했다고 한다. 이 김대건의 지도는 그 형태나 작법으로 미루어 볼 때 정상기(鄭尙驥, 1678-1752)의 「동국지도」(東國地圖)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김대건은 이 지도를 제작한 후 중국의 샹하이에 있던 선교사들에게 지도를 전달했다. 이 지도는 1855년에 빠리 국립도서관에 입수된 직후 한국에 관한 가장 정확한 지도로 평가를 받았고, 프랑스의 지리학회지에 발표되었다. 조선의 판도를 나타내는 이 지도에는 독도의 별칭인 우산도가 울릉도와는 별도의 섬으로 명백히 기재되어 있다. 김대건 신부는 우산도 즉 독도까지를 조선의 판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독도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연고권을 확인해준다는 측면에서 흥미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
한편, 1874년에 간행된 달레가 지은 「한국 천주교회사」에도 한 장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이 지도에는 한국(Coree)이란 표시가 되어 있다. 이 지도에는 동해상에 울릉도와 함께 독도의 위치가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비록 섬의 이름을 명기하지는 아니했지만 한국지도 안에 이 두 섬의 위치를 정확히 수록한 것은 독도를 조선의 영역으로 간주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현재 교회사 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는 「아세아동여지도」(亞細亞東與地圖)가 있다. 이 지도는 1875(明治 8)년 일본 육군성에서 제작한 군사용 지도이다. 이 지도에는 죽도(竹島)와 송도(松島)라는 두 개의 섬이 동해에 기재되어 있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울릉도를 송도라고 하고 독도를 죽도라고 하고 있지만, 이 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를 바꾸어 표시해 놓았다. 이 지도에는 조선의 영토를 붉은색으로, 일본의 영토를 청색으로 채색해 놓고 있다. 그러나 「송도」와 「죽도」는 아무런 채색을 하지 않은 채 남겨놓고 있다. 이 두 섬에 채색을 하지 않은 이유는 조선의 영토가 분명한 이 두 지역에 대한 영토적 침략 의사를 노출시킨 것이라 생각된다. 그 후 일본 정부는 1877년 최고 각료 의결기관에서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한 바가 있다. 이에 따라서 1905년 이전에 간행된 일본의 육군성과 해군성의 지도들로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시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지도를 통해서 독도에 대한 그들의 영토적 야욕이 이미 1870년대 초부터 있었음을 알수 있다. 그러다가 그들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침략적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우리 교회에서 제작한 지도를 통해서 우리는 독도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연고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수집하여 오늘날까지 보관되고 있는 일본 육군성의 지도를 통해서 일본 자신도 독도를 자신의 영토로 표기하지 못해왔던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독도에 관한 우리의 역사적 연고권을 더욱 굳히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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