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연한 4층을 5층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방문객을 고생시키는 건물이 있다. 「넉 사」자와「죽을 사」자가 발음이 같기 때문에 나온 미신인데, 어쨌든 다들 죽기는 싫은 모양이다.
죽을 둥 말 둥 싸운다는데 바로 투표가 그 꼴이다. 나의 한 표는 죽기 아니면 살기인 것이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예의염치를 따지면 꽁생원인 세상이다. 후보들은 표만 된다면 눈이 뒤집히고, 부자 간에도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 정치논쟁으로 맞고함을 친다. 일심동체인 부부도 투표에서만큼은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지혜로운 가정화목의 길이다.
그래선지 선거 때가 되면 사표 논쟁이 일어난다. 하지만 100% 찬성하는 체육관식 대통령 선거가 아닌 다음에야 사표는 있게 마련이다.
사표를 싫어하는 심리는 인간의 생존본능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써 이 생존본능을 뛰어넘는다. 투표란 당선에 기여함으로써만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반대표는 비록 다수가 아닐지라도 승리자에게 부담으로 남아 결국 살아 움직인다. 또 예상 밖의 선전을 하면 다음번에 대한 승리의 희망으로 사람을 내내 고생시킨다.
송두율씨는「역사는 끝났는가」라는 책에서 현실 사회주의의 패배를 씁쓸한 눈길로 바라보면서도 말한다. 늘 차선만 택한다면 진보는 이룰수 없다고. 우리 마음과 생활속에 깃들인 죽음의 권세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치고, 부활의 신념으로 죽을 표를 용감하게 던지자. 사표도 두려워 하면서 어찌 순교신심이 진짜로 자라나겠는가?
때에 따라 차선이 지혜로울 때도 있겠으나, 차선의 논리가 늘 최상의 행동원칙인 것처럼 권하는 이들이 나는 뱀처럼 싫다. 사순절엔 소수파의 외로움과 수난도 체험해 보자. 이번 총선은 부활 첫 주에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