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과 원전을 지역주민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원리이다. 이것을 님비라고만 보는 조선일보의 사설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 지난 35년간 정권을 오로지 섬겼던 언론들의 작태는 문민정부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위천공단과 영광원전의 문제는 정치와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져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든가 경제적인 수단으로 밀어 붙인다면 배타적인 이해관계에서 생기는 마찰을 줄일 수 없다. 이를테면 대구 사람들은 위천 절대 찬성! 반면에 부산 사람들은 위천 절대 반대! 과연 어느 쪽이 옳은가? 부분적으로는 옳기 때문에 어느 쪽도 나쁘다고 볼 수 없지만 산업문명의 몰락과 쇠퇴기에 처해있는 문명의 전환기에서 볼 때 공단과 원전은 이제 더 이상 발전의 모델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생태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선 건강하지 못하며 생태 파괴적이고, 다른 측면에서는 현대 사회의 골칫거리인 악성 인플레이션의 주범이다. 지금 가뭄이 심각한 것도 산업 공해로 인한 생태계의 전체적인 시스템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비직선적 특성을 무시한 채 돈이라든지 또는 효율 등의 특성만을 고려하여 공단을 계속 짓는다면 차츰차츰 발전의 무게를 견디어 내지 못하여 현대 공업문명은 그 자체로 붕괴될 것이 뻔하다. 이제 공단은 발전의 상징이 아니라 이미 낙후성의 상징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지금 당장의 눈앞의 사사로운 이익보다 전체적이고 장기적이고 사회전체에 유익한 정책을 실현할 의식과 의지가 필요하다.
언제 어느때 재앙을 불러 일으킬지 모르는 원자력 발전소도 마찬가지이다. 원전을 구태여 고집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여기에 걸린 국내외 재벌들의 이해관계가 손상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제 우리는 부드러운 에너지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경제적이면서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무공해 에너지 즉 태양에너지가 있지 않은가.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에너지를 개발하고자 하면 가능하다. 문제는 국제 석유회사의 횡포이다.
지금 성령이 신음하고 있다. 육감이란 누구에게나 있다. 사람이 제 아무리 마술을 부린다 하더라도 우리는 파국, 종말을 치닫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 모두 죽으리라는 육감을 지울 수가 없다. 영광 핵발전소 5ㆍ6호 건설이나 위천공단 조성의 반대는 대안없는 반대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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