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의 주교단을 대표해 한국 주교회의 의장 이문희 대주교와 일본 주교협의회 회장 하마오 후미오 주교 등이 지난달 16일 일본 동경에서 「한-일 교과서문제 1차 간담회」를 갖고 두 나라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역사교재를 만드는데 일치를 보았다는 소식이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주교단 대표들이 만나 공통의 역사인식을 토대로 한 「역사 교과서」를 가까운 장래에 편찬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은 「독도 영유권」문제 등으로 양국 관계가 불편한 상황에서 들려온 예상치 못한 낭보(朗報)로서 크게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간담회에서 두 나라 주교들은 한-일간 공통의 역사인식을 갖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원칙 외에도 몇 가지 구체적인 방안들에 대해 합의를 보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 내용은 양국 젊은이들이 공통의 역사인식을 갖도록 하기 위한 역사교재를 빠른 시일 내에 편찬하며 아울러 양국의 가톨릭학교에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노력도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두 나라 주교단이 상대국의 역사학자를 초청해 이 문제를 논의하는 방안과 사적지(史跡地)를 상호 방문하는 체험학습, 역사학자들의 교류를 활성화 해 자료를 근거로 한 공동연구의 장을 마련한다는 등의 구체안이 제시됐다.
또 주교단뿐 아니라 평신도와 수도자 성직자들의 교류를 활성화함으로써 서로의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노력도 아울러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두 나라 주교단이 합의한 내용을 보더라도 너무 앞서가지도, 그렇다고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둔 형식상의 논의에 그친 것도 아닌 매우 적절한 방안들이 검토되고 합의되었다는 인상이다.
이날 양국 주교회의 의장 등이 회동하게 된 것은 지난해 1월 마닐라에서 개최된 세계 청소년 대회와 아시아 주교회의 총회에서 두 나라 주교회의 의장들이 만나 극동지역 같은 문화권의 청소년 교류와 또한 공통된 역사인식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함으로써 이뤄지게 된 것이다.
사실 한-일 양국 간의 역사인식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82년 일본 내 역사·사회교과서 검정때 비롯된 두 나라간의 역사인식 및 서술 문제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이 문제의 딜레마를 입증해준다.
82년 당시 일본 문부성은 사회·역사교과서를 새로 검정하면서 한국침략을 한국진출로, 주권탈취를 양위재촉, 애국지사 탄압을 치안유지, 토지약탈을 소유권 확인, 3ㆍ1운동을 데모 폭동, 한국어 사용금지와 신사참배를 강요하지 않고 장려했다는 식으로 왜곡한 것이 문제의 도화선이 됐었다.
거센 반일(反日)여론을 배경으로 당시 한국정부는 「교과서 왜곡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가장 왜곡이 심한 19개 항목을 선정, 일본 측에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측의 소극적인 태도는 84년 86년 또 다시 이 문제가 불거지게 한 원인이 됐으며 89년에는 도쿄 지방법원이 『역사교과서에 관한 문부성의 지시는 상당 부분 합리성이 있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또 한 차례 갈등을 빚게 된다.
결국 일본의 교과서 왜곡문제는 2-3년을 주기로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현재진행형 사안인 셈이다.
이러한 배경을 안고 있는 역사인식의 문제를 양국 가톨릭교회가 해결해보겠다고 나섰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려와 희망이 섞인 두 가지 생각을 갖게 된다. 하나는 국익과 나라의 체면에 관련된 이러한 문제가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다. 교회로서도 여론의 반응을 도외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며, 교회 안에서도 이견이 도출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상당한 시일을 필요로 할 것이며, 순탄치만은 않으리라는 예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은 두 나라 교회가 이러한 문제를 떠안고 부딪쳐 보겠다고 나선 바로 그 점에 있다.
이문희 대주교의 말처럼『양국 교회가 국가의 이익을 대표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같은 하느님을 믿고, 같은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대화를 거듭하며 서로의 이해를 심화시킴으로써 공통의 역사인식을 갖게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구원관에 입각해 두 나라 교회가 서로 협력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도 「한 신앙」이 라는 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한-일 역사교과서」문제는 양국 주교단 차원의 논의를 거쳐야 하고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남겨놓고 있다. 실무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작은 반」이라고 했다. 모쪼록 시도된 이 문제가 끝까지 결실을 거두도록 유언 무언의 관심과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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