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를 읽었다. 하느님 말씀은 감미로웠고 심오했으며, 또 다른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내 마음속에 그가 자리를 잡았다. 집에 가기만 하면 교회에 나가자고 졸랐다. 동생들 중 하나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힘이 되어 주어 이듬해 할아버지의 동의로 전 가족이 교회의 문을 두드렸고, 장로교 신도가 되었다. 세계사 시간에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신ㆍ구교가 분리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가톨릭 신앙에 아주 무지했으며 개신교의 영향으로 부패된 중세교회와 면죄부 사건들에 의해 아주 부정적이었다. 또한 짧은 지식으로 성당에 다니는 친구들을 비판하고 어리석은 질문으로 괴롭혔다. 그들이 자신의 신앙을 똑바로 설명하지 못하고 당당하게 증거할 수 없는데 대해 의혹을 느끼기도 했다.
사실 나 또한 남들에게 교인이라고 자처했지만 사이비 신자였고 기복적인 엉터리 신앙을 갖고 있었다. 시험이나 무슨 대회가 있을 때 성공을 빌며 기도했고, 공장에 출근할 때 불량품이 안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현장근무가 때때로 주일에도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교회 나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지긋지긋한 기계소리와 노예 같은 현실에 벗어나려고 학교 도서관에 갔다. 원래부터 책을 좋아하던 나였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행복한 소리만 한다는 편입견으로 멀리해 왔다. 나는 다시 책들에 파묻혀 시간 가는 줄을 몰랐고 기숙사에 늦게 돌아와 벌칙으로 화장실 청소도 했다. 수준을 넘는 책들을 들고 씨름했으며, 때때로 무엇을 얻은 커다란 포부와 행복감도 만끽했다.
어느날 호기심으로 친구가 들고 있던 불교소설을 빌려 읽었다. 정신적인 방황을 하던 나에게 마력처럼 작용하여 며칠을 뜬 눈으로 보냈다. 삼라만상의 법칙, 우주에서 하나의 점보다 더 작은 나의 존재는 허무이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3이 되어서야 학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게으름을 부리고 시간을 쓸모없이 소비해 버렸음에 눈물을 흘렸다. 약간 늦은 감이 있었지만 대학 진학을 희망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성적 또한 나의 노력에 비례했다.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아버지는 펄쩍 뛰며 나의 진학 희망에 반대했고, 어머니는 내가 시험을 쳐 합격이 되면 떼를 부리고 대학을 갈까봐 두려워 했다.
일이 안되려니까 아버지가 수도공사 도중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고, 졸업과 동시에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입원하게 되었다. 그 해는 우리 가족에게 잔인했으며, 내게서 남아 있는 꿈마저 앗아버리려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운명의 장난에 나를 맡길 수 없었다. 부모의 뜻을 거슬러 부산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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