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세계 가톨릭 여성대회 (WUCWO)에 참석하기 위하여 서울대교구 가톨릭 여성연합회 박애주 회장, 이근자 총무, 전주연합회 이정자 회장 그리고 필자 네 사람은 1월30일 개최지인 호주 캔베라로 출발했다. 캔베라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한여름 같은 더위가 몰아쳤다.
대회장인 호주 국립대학에 도착하자 뚜렷한 안내판도 없고 맞아 주는 이도 아무도 없었다. 우리 일행이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식당에서 호주 각지에서 온 회원들과 잠비아, 카메룬 등 남아프리카 회원들을 만났다.
박애주 회장님이 한국의 새 이사 후보라며 나를 소개하자 검은 피부의 몸집이 큰 잠비아 수녀님이 눈을 휘둥그리고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나를 껴안고 두툼한 뺨을 내 뺨에 대는데 섬쩍했다.
총회 주제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리라 (묵시록 21,5) - 여성: 화해와 희망」이었다.
총회 연수는 2월3일 캔베라시에 있는 주교좌 성당에서 7백여 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미사로 시작됐다.
우리 일행은 전통 한복을 입고 참석했다. 모든 회원들이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우리들은 졸지에 사진모델이 되고 말았다.
회의장에 돌아와 각 나라 대표들을 소개하는 전체모임에 이어 20명씩 각 교실에 분산되어 그룹토의가 시작되었다. 토의 제목은 「나 자신과의 화해」였다. 토론 중 첫 회원이 말로 표현하기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자 동감의견이 계속됐다. 나는 「스스로가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이라고 짧게 발표했는데 의외로 박수를 받았다.
하루일과는 5시30분에 끝난다. 그룹토의는 「타인과의 회개」「여성단체 회원으로서의 화해」「사람과 사람간의 화해」「성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화해와 희망에 대한 행동과 실천」등 5일간에 7가지 제목으로 진행되었고 마지막 날(2월7일) 교회일치의 행사, 종합결의, 파견미사 등으로 끝내고 2월9일부터 총회로 이어졌다.
총회 연수 동안 미사와 기도모임은 매일 거행되었다. 하루도 같은 시간대가 아닌 오전, 정오, 오후, 저녁시간에 각 지역이 차례로 주관했다. 남아프리카에서 주관하는 미사는 이색적이었다. 북을 치면서 그들 특유의 음색으로 입당송을 부르며 입장했고 광주리에는 자기들의 특산물을 담아 제대에 바쳤다. 미사 중에도 짐승 울음소리 같은 미성을 지를 땐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초대교회 전례모습을 상상케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주관한 미사는 러시아 정교회 예절을 연상케 했다. 우선 주교님의 제의가 황금색 두꺼운 천이었고 보좌신부님은 하의를 옛 유럽 기사처럼 입으셨다. 쉴 새 없이 성가가 이어지고 주교님이 기도문을 낭독하실 때 보좌신부님은 굵고 긴 원통형 봉을 높이 쳐들고 있는 모습은 마치 오페레타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2월4일 연수 일과가 끝난 후 아태지역 페스티발이 열렸다. 우리는 수개월 전부터 캔베라교인 회장을 통하여 현지 교민 가운데 한국 고전무용가와 약속이 되어 있었다. 날아갈 듯 한 의상으로 승무춤과 초립동을 멋지게 추었다. 춤 해설을 박 회장님께서 영어로 하셨다. 우뢰와 같은 박수와 「뷰티풀(beautiful)」이 연발됐다.
7일째 되는 날부터 참가인원이 줄기 시작했다. 당연직 이사만 남기고 호주 관광길에 나선 것이다. 총회에서는 경과ㆍ사업ㆍ재정 보고에 이어 사업 우선순위 등을 각 나라 이사들이 카드를 높이 들어 찬성, 반대, 기권 등의 표시로 한 가지씩 통과시켰다. 이사회에서는 캐나다 측 제의로 여사제에 관한 문제가 거론되었지만 총회에는 내놓지 않기로 했다고 박 회장님이 말씀하셨다.
12일 마지막 날은 새 이사들만의 모임이었다. 새로 뽑힌 멕시코 마리유진 회장이 이사회를 주도했다. 이 자리에서 나는 「연수기간 5일은 다소 길다. 3일이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는데 고려해 보겠다는 답변이었다. 영어,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네 가지 언어가 통용되어 동시 통역사들이 민첩하게 통역을 해주었다.
13일 아침 15일 동안 머물렀던 호주 국립대학을 떠나 귀국길에 올랐다. 15일 동안 여성의 눈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고 느끼고 얻게 돼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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