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바로 다음 날, 한 단체에 들어가 25년간 ‘공동’ 생활을 하다가 십여 년 전부터 나는 다시 ‘독거’를 한다. 회사에서 부서원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고, 또 아직은 ‘독거’라는 말 뒤에 흔히 붙는 명사가 더해질 나이는 아니지만 말이다. 어떻든 오랜 ‘공동’ 생활이 허망하리만치 과거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지는 못하고 있다. 서운하거나 원수져서는 아니고 그저 ‘발등에 떨어진 불’ 끄며 살기 바빠서다.
그들 대부분과 큰 무리 없이 지냈지만, 제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이가 딱 한 사람 있다. 용서하거나 받아야 할 관계는 아니고, 그저 몇 마디 말에서도 내 마음에 생채기가 되고야 마는 참 ‘위대한’(?) 대선배였는데, 최근 바로 그와 룸메이트가 될 뻔해 기겁했다. 함께 여행한다는 것, 더구나 룸메이트로 십여 일을 함께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로 인해 천국과 지옥이 나뉠 정도다.
우리 인생은 자주 여행에 비유되는데, 부부는 어쩌면 그 여정의 동반자이자 룸메이트일 것이다. 그것도 십여 일이 아니고 평생 함께하는. 그게 쉽지 않으리라는 건 이미 경험한 ‘공동’ 생활에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 만들고 있는 책 ‘산티아고 길의 소울메이트’의 저자 부부가 놀랍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처지의 남편에게 아내는 다만 ‘세례’ 받으라고만 했고 남편은 고마워하며 응했다. 그러다 부부는 문득 산티아고 순례를 떠난다. 40여 일을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줄곧 함께해야 하는 것이 오십대 부부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그런데 이들 부부는 그 길에서 진정한 ‘소울메이트’가 되었다고 한다. 타인이 자신의 지옥일 수 있지만, 타인 없이는 행복도 맛볼 수 없는 게 우리 인생이다. 룸메이트가 단순히 공간을 나누는 이가 아니라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음을 깨우쳐 준 그 부부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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