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위해 동정을 지키겠다는 내 말에 대모님은 홀로 이 세상에서 특별하게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니 수녀가 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나는 만 스무살이 되기까지 한번도 수도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사실 수도자의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 관심조차 없었던 상태였다. 성당 교리시간에 처음으로 수녀님을 만나게 되었고, 마더 데레사 같은 분들을 신문지면이나 TV를 통해 보았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일을 위해 (인류를 위해) 특별히 보내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성세의 은혜는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했고 죽음을 통한 부활이었다. 부모님 말대로 다소곳이 있다가 좋은 사람 만나 시집 잘 가면 될 일이지만, 그보다 참 진리로 나를 자유롭게 하실 주님의 삶, 완덕의 길에 더 끌렸다.
나의 부모님은 제발 성당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테니 그런 어리석은 생각은 아예 버리라고 두 손을 싹싹 빌었다. 목사님과 교회 장로들이 와서 한 때 젊은 처녀의 꿈이니 너무 상심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기도하라고 권유했다.
아버지는 당신 딸의 고집에 질려 있었고 한번 먹은 마음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절망했다. 수도생활에 무지한 어머니는 공동생활하는 나를 보러 와서는 『마리아! 한 2년만 도(道) 닦고 시집가거라』했다. 외국인인 원장수녀님은 무슨 말 뜻인지 몰라 잠자코 있다가 동료들이 폭소를 터뜨리니 함께 웃었다.
나의 입회 이후 부모님께는 정신적인 타격이 컸지만 조금씩 성령의 인도로 변화되어 갔으며 신앙의 광야에서 정화되어 갔다. 어느 순간인지 모르지만 아버지와 나의 관계도 변화되어 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의 성소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참 수도자가 되려면 온전한 투신을 하라고 충고도 해주셨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모습은 수녀교육을 받으러 프랑스로 가는 딸을 배웅하러 오신 김포공항에서 였다. 쑥스러워 사람들 앞에서 울지 못하고, 한쪽 모퉁이에 숨어 울고 계시던 아버지. 고국을 떠난지 10개월이 못 되었는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신을 통해,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이 직접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를 원하셨으며 대세를 받고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4년이 채 못 되었을 때 어머니마저 몸저 누우셨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한 불효를 씻으려고 총장수녀님 허락으로 급히 귀국했다. 5년이라는 나의 부재기간 동안 집안은 많이 나아졌으며 어머니는 교회의 집사가 되어 있었고, 신앙적으로 많이 발전하셨다. 어머니를 간호하며 가톨릭 신앙에 대해 가르쳐 드리고 가끔씩 교회일치 운동을 위한 기도를 했다. 어머니는 오래 사귀던 당신의 친구들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몰래 신부님을 청해 당신의 딸이 보는 앞에서 세례를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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