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연유로 냉담을 한 B씨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종을 가진 이른바 성공한 지식인 계층이다. 그러나 언제나 꾸밈없고 소박하며 모범신자였던 그가 성당에 안 나간지 몇 달이 되었다고 했다. 특별한 이유나 생활의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굳이 이유라면 기계적인 자신의 신앙생활에 권태가 온 것이라고 했다.
그저 형식적이고 관행적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졌고, 신부님들의 자극없는 강론, 준비없이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지도자들의 모습, 면피용의 고해성사, 죄의식 없이 늘어선 영성체 행렬, 그 속에서 길들여진 자신을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랐을 뿐이라고 했다. 따로 따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돈으로 명예로 학연으로 얽혀진 세속적인 공동체와 교회가 무엇이 다르며, 선택되었다는 세속적 자부심을 액세서리 같이 내걸고 선인과 악인이 모여 독선과 아집으로 하향적으로 평준화를 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했다.
교회는 날로 비대해져 가고 있다. 그 비대한 내부는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는가. 교회는 절대권위의 상징인가. 우리는 무엇을 나누고 있는가. 교회도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 물결치듯 적절히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고고하지도 않고 값싸게 놀지도 말고 그저 적당히 있는듯 없는듯 종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교회, 아름다운 결혼예식장이기도 하고, 엄숙한 장례식장으로 더 알려진 교회, 일만 터지면 은신처나 대피소가 되는 교회, 설득보다는 그것을 자선과 혜량으로 알고 으시대는 교회. 사람들의 영혼 육체는 병들어 가고 있는데 교회는 언제까지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인가.
교회는 이제 고고한 종소리를 헌신과 사랑으로 울려야 한다.
한낱 장사꾼들의 선전장소도 아니고 외로운 이들의 사교장소도 아니요 돈있는 자들의 시혜장소는 더더욱 아니어야 한다.
실의와 좌절에 빠진 이들을 품어주고 목마른 자에게 청정한 영혼의 샘물을 공급해 주어야 할 것이다. 사랑에 굶주린 이들을 수용하고 그들의 보편적인 소망을 실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날로 호화로워지는 교회의 분위기도 달라져야 한다. 텅텅 비어있는 공간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개방해야 할 것이다. 아름답고 의미있는 교회의 여러 제도는 인간 공동체 안에서 적절히 운용되고 강조되어야 한다. 사순절의 의미도 강조되고 세족례, 만찬회 같은 것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더욱 실천하는 행사로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통과의례만의 장소여서는 안될 것이다. 신자들을 교회안에 더 많이 더 오래 머무르게 해야 한다. 신자들끼리 더욱 친교를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연구해야 한다. 옆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면서 형제애를 강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평화의 인사도 내용을 알고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교회조직의 활동단체는 좀 더 시야를 넓히고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자기들만의 친교 공동체가 아님을 자각하게 해야 한다. 교회는 넝쿨처럼 얽혀있기를 소망한다. 형식적으로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넝쿨은 생기를 잃고 시들하거나 세속적 친소관계에 불과할지 모른다. 교회도 인맥이나 친소관계를 배격해야 한다.
교회는 가난해도 좋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가난한 가운데 순정을 교감할 수 있고 지극히 인간적이며, 급기야 하느님의 체온을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온갖것을 다 하면서 극기하고 인내해야 한다고 설교해봐야 무슨 의미와 감동이 있겠는가.
이젠 교회가 종소리를 울려주어야 한다. 소리를 낼 수 없으면 파문과 여울의 잔잔한 물결같은 정적과 침묵의 무게를 지녀야 한다. 교황께서도 한국교회의 물질적 세속화를 더없이 우려하고 계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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