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이 시성의 영광을 안은지 벌써 12년이 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1984년 5월6일, 그날의 감격을 잊지 못하고 있다. 잊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무수한 순교자들에 비한다면 보잘것 없는 수치일수는 있지만 1백3명이라는 순교자들이 동시에 성인품에 오르는 유례가 없는 영광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른 여명,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모여든 신앙인파는 시성식장인 여의도 광장을 모두 메워버렸고 그날은 한국교회 창립 이래 최대의 경사를 맞이한 날이 되었다. 신자들은 흥분했다. 한국교회 구성원 모두가 그렇게 흥분하고 그렇게 기뻐한 날은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한국 천주교회가 80년대에 치뤄낸 이른바「빅 스리」(81년 조선 천주교회 설정 150주년, 84년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 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 행사는 80년대 당시 한국의 정치 사회적 정서, 풍토와 맞물려 가능했던 것이라고도 진단하고 있다.
어쨌거나 84년의 시성은 우리 교회의 역사상 참으로 중요한 부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한국 천주교회 2백년 사상 처음으로 성인을 맞이하는 축제이기도 했지만 한국교회가 한국 사회 안에서 맡아야 할 몫과 사명을 확실하게 자리매김해주는 중대한 시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2년이 흘렀다. 혹자는 그날의 감격과 영광이 퇴색되어 가고 있는 만큼 우리의 신앙도 생기와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하고 있다. 증거의 시대를 선포한 당시의 다짐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영광은 퇴색되고 흥분은 가라앉게 마련인 것이 이치가 아니었던가.
한국교회의 신심이 가라앉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 때마침 우리 교회 안에서 순교자 현양운동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는 소식은 참으로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김대건 신부 순교 1백50주년을 기해 부활된 한국 순교자 현양위원회를 중심으로 준비되는 갖가지 신심운동들은 84년 우리가 다짐했던 증거의 삶을 새롭게 일깨우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김대건 신부 순교 1백50주년의 해에 맞는 김대건 신부 시성 12주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그래서 더욱 크다 하겠다. 우리가 다시금 시작하려는 신앙의 부흥운동, 그것은 진정 우리 스스로 참으로 신앙인답게 새로워지는 일일 것이다. 이를 위해선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 나부터 거듭나기 위한 다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시성 12주년이 또 한 번의 기념일로 스쳐지나가 버리고 만다면 103위 순교 성인들은 물론 무수한 우리의 순교 선열들에게 후손으로서의 체면이 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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