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0월29일 새벽, 친구 2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한 친구는 25m, 나는 33m 나 튕겨져 나뒹굴었고, 그냥 의식불명의 암흑세계에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35일이라는 날은 지나갔고, 한 달여 만에 의식을 찾아도 뇌좌상으로 인한 정신착란 증세로 울부짖는 상처입은 들짐승이었습니다. 또한 우측 시신경 손상에 따른 실명, 우측 슬관절 골절에 따른 장애, 우측 팔ㆍ 다리 신경마비 등 전치 32주의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젊음과 기억의 장에 검은 장막이 내려졌지만 그래도 시간은 흘러, 87년 3월 봄비 내리는 어느 날 오후, 가려진 장막은 열리고 광명의 빛이 의식을 자극했습니다.
『여기가 어디죠? 내가 왜 이래요?』이렇게 외치는 소리는 공허하게 허공을 맴돌다 날카로운 비수로 내 가슴을 찔렀습니다.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무슨 말인지 빨리 이해도 되지 않았고, 또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수많은 교통사고, 사고, 사고…. 나와는 무관한 강건너 불구경으로만 생각했던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며, 구경꾼이 아닌 주연 배우로서 우측 다리 전부를 석고 붕대로 휘감고, 외관은 멀쩡하지만 보이지 않는 우측 눈, 움직이고 말하기 조차 힘든 우측 손, 입 등 괴상망칙한 모습으로 병원 침대에 버려져 있게 되었습니다.
기쁨, 즐거움, 희망만을 노래하던 내가 고통에 일그러진, 절망, 불구라는, 전에는 몰랐고 알려고조차 하지않은 것만을 관객으로 모신 눈물 흘리며 절규하는 슬픈 삐에로가 된 것입니다. 너무나 허망했습니다. 건강과 젊음을 자신하던 내가 졸지에 병신이 되다니 세상에 이럴수가….
악몽같은 시간을 저주하며, 살아난 것에 대해 증오감을 느끼고, 불구자로 살아가느니 자살해야 되겠다는 엉뚱한 꿈을 그릴 때, 지금은 신학과정을 밟고 바티칸에 유학가 있는 친구가 면회와서 말한 첫 마디는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여! 고맙습니다』였습니다. 어처구니 없더군요. 이런 나를 보고 감사하다니, 이 친구가 나를 놀리나 하고 화를 벌컥 내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정색을 하며『친구여, 화만 내지말고 생각을 해보게나. 자네가 다쳤다는 것은 너무도 가슴 아프지만 기적적으로 살아 나지 않았나? 바로 그것이 주님의 은총, 도우심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하며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화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수긍이 갔기에 잠자코 친구를 바라보았습니다.
특히 대학시절 나와 같이 술·담배 등을 즐기며 노는 것을 좋아했던 친구가 2년여 사이에 완전히 변모한 것에 아연실색했습니다. 그의 두 눈에는 평화가 가득했고, 웬지모를 기쁨이 넘쳐 흘렀습니다. 아! 신기하다. 저렇게 바뀔 수가…. 주님이란 누구시길래, 무슨 힘이 있기에 친구는 그저 주님의 존재를 찬미할까? 하고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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