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말 많은 세상이 또 언제 있었을까? 세상이 다원화되어서인가 풍부한 지식과 독특한 시각으로 그럴듯하게 말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가뜩이나 온갖 소음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 많은 소리까지 듣다 보면 사람의 말소리 자체가 싫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으로 잠시 피해 있고 싶은 충동마저 든다.
라디오에서는 ‘묵음’(默音)이란 표현 방법이 있다. 말 그대로 몇 초 동안 의도적으로 말은 물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것이다. 묵음은 묵음 다음의 이야기나 묵음 앞의 이야기를 강조해준다. 또는 장소의 변화나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기도 한다. 성우와 성우의 말 사이의 묵음은 두 사람 사이의 동작이나 상황을 그려낼 수도 있다. 라디오를 만드는 사람은 그 묵음으로 말하는 방법을 익혀야 하고 묵음으로 표현한 것을 들을 줄 알아야한다.
신앙생활에서도 ‘침묵’(沈默)은 의미가 깊다. 불교에서는 ‘묵언수행’이란 수련 방법이 있고, 가톨릭에서는 ‘침묵 피정’이 있다.
“입을 닫는 순간 귀가 열리고, 오감이 열리죠. 예수의 마음 배우기 침묵 피정을 혼자서 40일 동안 했는데요. 침묵 속에서 기도를 30일쯤 하다 보니까 저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내면을 깊이 있게 성찰하다 보니, 그 작은 소리마저 들린 거죠.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어요. 침묵은 하느님의 언어입니다.”
성바오로수도회 관구장 안성철(마조리노) 신부님의 말씀이다.
총선이 한 달도 안 남았다. 말들이 너무 많다. 게다가 감정들이 격해 있으니 그 많은 말들이 소음처럼 들린다. 출마하신 분들도 침묵으로 말할 줄 알고,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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