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의 말들은 내 가슴에 자리를 잡아갔고, 바른 소리로 나의 이성에 인식되어져 갔습니다. 이렇게 마음은 성령의 부르심에 조용히 응답하게 되었습니다.
약 8개월의 병원생활을 끝내고 대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서울로 취직되어 상경할 때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좋아하는, 꼭 무엇이라도 될 듯한 힘찬 모습이었지만, 귀향시는 고통과 절망, 실망과 불구자라는 패배감만을 가득히 안은 목발 차림의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어둠을 몰아내준 구원의 빛줄기
집에 돌아오니 건강하고 좋기만 했던 지난 추억들은 나를 괴롭히고 약올리는 악몽이 되었습니다. 부서진 육체와 실업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가슴에 패배자라는 낙인을 찍어주었고, 실망과 좌절이라는 굴레는 영혼을 옭아맺습니다. 한창 건강할 때야 쉬면서 맞이하는 나만의 조용한 시간들은 달콤한 시간들이었지만, 사고후 집에서 맞이하는 혼자만의 시간들은 삶의 대열에서 낙오되어 홀로 남았다는 적막감과 교통사고 후유증을 확인시켜주는 무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둠에 갇혀있을 때 용기를 주고 이끈 것은 나를 치료해준 의사들과 가족들, 친구들의 따스한 손길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버리고 고통과 절망이라는 것에 내가 무너진다면 사나이 대장부로, 또한 대한민국 장교 출신으로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돌봐준 모든 이의 사랑에 고마움을 느끼며 스쳐갔던 순간들을 연상하다 친구가 말했던 주님, 예수 그리스도란 분을 자주 생각하게 되었고, 그분을 한 번 만나고픈 생각, 막연한 구도심에 마음 설레며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죽음의 요르단강을 건너갈 때 나를 건져주신 분은 바로 주님,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이실 거라는 생각이 불변의 진리처럼 강하게 인식되었습니다. 비록 육신은 와장창하고 부숴졌지만 생명은 건져 주셨듯이, 이렇게 고뇌하고 아파하는 영혼도 깨끗이 치유해 주실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병든 영혼을 치료받는 기분으로 대구 대봉성당을 찾게 되었습니다.
정문을 들어서자 바로 보이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왠지 모를 편안함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두 팔을 벌리시고 미소지으시는 자태가 나같은 죄인들을 어서 오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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