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재판과도 같았다』고 독일 출신 집행위원은 자평(自評)했다고 한다. 현명한, 그러나 어려운 결정이었다는 뜻이다.
한 일 공동 과제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의 한일 공동개최 결정은 매우 절묘한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 『아쉽지만 잘 됐다』『이제는 잘 치르는 일만 남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반응인데 분위기만 비교한다면 우리 측이 승자이고 일본 측은 패자다. 어느 쪽도 완승완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말이 나기까지의 과정과 결말이 난 뒤의 태도에서 일본이 다소의 조급함과 열패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승패를 가리기는 아직 시간이 이르다. 아니, 승패를 가리는 일이 무의미하다. 한국과 일본은 단독개최보다 공동개최가 더 아름답고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입증해야 할 공동의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공동개최는 월드컵 축구가 창설된 이래 처음이다. 이런 점에서 공동 주최자인 두 나라는 나란히 시험대에 선다.
처음인 것은 공동개최만이 아니다. 아시아에서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리는 것도 처음이다. 세계가 아시아 시대를 확인하는 또 한 번의 계기가 된다.
21세기에 개최되는 월드컵 축구대회로서도 2002년 대회는 처음이다.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축제인 이 대회를 통해 인류는 새로운 세기의 개막을 실감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색다른 기회를 맞이한다.
가장 중요한 인자(因子)는 공동개최자인 한국과 일본이다. 「불행했던 과거」를 지닌 두 나라는 역사적으로나 현실에서나 불신과 갈등의 관계가 심각하다. 월드컵대회 유치과정의 경쟁이 과열되고 전투적이기까지 했던 것도 이런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관계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바로 그 같은 두 나라의 관계를 향해서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주문하고 나선 것이 「공동개최」라고 하는 낯선 과제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집행위원들을 통해서 국제사회는 우호와 협력과 화해를 두 나라에 요구하고 나선 셈이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가 패자가 되는 과열 경쟁에서 벗어나 「모두가 승자가 되는」새로운 관계를 받아들이도록 설득당한 것이다.
우호ㆍ협력요구
사실 지난 몇 달 동안 월드컵대회 유치 경쟁의 과열상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을 줄 정도로 보기에 낭패스러운 것이었다.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물러나서는 안 되는 「전투」였고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전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만약에 우리가 유치를 못하면 가뜩이나 최악의 상황을 치닫는 한일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퇴로(退路)없는 추진이 문제로 보였다. 「이기는 경쟁」만 있을 뿐 「지는 경쟁」은 있을 수 없다.「지고도 이기는」 중도(中道) 따위도 더욱 없다. 목회자가 나서서 「유치 기도회」를 열면 스님들이 모여서 「유치 기원 법회」를 열었다. 엽서를 보냈다 하면 백만 장이요 상징물을 만들었다 하면 2002 m.
무엇이든 통 크고 야단스러워야만 하는 극성스러움이 대견함보다는 걱정을 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월드컵 유치에 국운을 건 나라에 살고 있는가? 월드컵을 유치하면 물론 좋은 일이지만 유치가 되지 않은들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하는 대범한 생각은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는 듯 했다.
이런 과열을 부추기고 앞장서 이끈데는 매스미디어들의 역할이 단연 돋보였다. 열기를 식혀야 할 언론이 열기를 부채질 했다면, 그 책임도 적지는 않지만, 그런 저런 극성과 열성이 공동개최라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동력이었으므로 결과를 놓고 문책을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 사회의 탐욕스러움을 드러낸 과열부추기에 대한 반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과열 반성해야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공동개최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길은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한 「화해」를 이루는 것이다. 공동개최라고 하는 뜻밖의 방법에서 「공존의 미학」을 발견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방법도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실천할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넓은 마음과 대범한 생각으로 우리가 먼저 한국과 일본을 가르고 있는 벽을 깨는데 나설 수도 있다. 우리가 확인한 것은 자신감이다.
극한 대결만이 능사인 사회에서 함께 사는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은 최대의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성숙한 관계로 도약하고, 남과 북이 분산 개최의 뜻을 살려 통일의 길을 가며, 친절과 질서의 시민의식 개혁으로 일류 국가로 나서게 된다면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는 세계 평화로의 기회로서도 뜻 깊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