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 6월2일자에 새 미사통상문의 문제점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거론된 문제점 중에는 과거의 통상문보다 오히려 부적절 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미사통상문 개정에는 몇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알기 쉬워야 한다. 가톨릭 신앙은 소수의 특수층을 위한 신앙이 아니고 모든 이를 위한 보편성 있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둘째,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
셋째, 용어가 가톨릭적이어야 하고 어감에 있어서 품격이 있어야 하고 어색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용어이어서는 안된다.
김인영 신부님께서 지적한 내용 중 공감되는 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와 「그리스도」의 개칭에 따른 문제점이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했는데 「자비」라는 말마디는 불교에서 많이 쓰는 용어로 가톨릭적 분위기와는 약간 멀다는 생각이다.
「그리스도」에서 「그리스도님」으로의 개칭은 어감상 오히려 어색하다. 2백년이 넘게 사용해 왔던 용어를 갑자기 바꾸는 것은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 정종휴씨의 경우 문어체를 선호하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미사통상문에는 문어체든 구어체든 상관없이 내용에 따라 적절히 골라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정종휴씨는 법학자로서 법조문에 익숙해서인지 어려운 문구가 많고 문어체를 선호하면서 약간 보수적이면서 주관적인 견해에 치우치지 않았나 생각된다.
정종휴씨가 거론한 내용 중 사도신경의 한부분인 『고성소에 내리시어』를 『저승에 가시어』로 바꾼 것은 잘된 표현이라고 했는데 적절치 못한 표현이라 본다.
「저승」이란 용어는 우리말 이기는 하나 지나치게 통속적인 색채를 띤다. 또한 어감상 사후세계에 대한 희망보다는 공포심을 주며 가톨릭적 분위기와는 먼 느낌을 준다. 이러한 용어가 가톨릭의 핵심기도문인 사도신경에서 하느님의 한 위격인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타내는 용어로서는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예수님의 죽음은 부활을 핵심신앙으로 하는 가톨릭에서 큰 의미를 갖는 바 예수님의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며 부활을 기다리는 희망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차라리 기존의 『고성소에 내리시어』가 더 나은 표현인 것 같다.
이 같이 새 미사통상문에 대한 문제점은 현실적으로 반영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하나 개정작업에 참여한 분들은 참고해 주길 바랄 뿐이다.
아울러 이번 새 미사통상문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교회의 여러 이기주의적 교구 중심주의적 문제점에 대해서도 평신도로서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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