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멋대로 떠들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당황해 하는 그녀를 홀로 두고 다방을 나와 버렸습니다. 엄청난 후회감이 소용돌이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돌아오는 버스 유리창에 비친 얼굴엔 다시 실망과 좌절이 메아리쳤고, 불구자가 되었다는 현실이 가슴을 갈갈이 찢었으며 사고 때 죽지않은 것을 다시금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도 하지 않고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너무나 사랑하는데도 숨겨야만 하는 자신을 저주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누가 어깨를 흔들며 깨웠습니다. 자리를 뒤척이다 겨우 눈을 떠보니 아! 나를 내려다 보는 그녀의 얼굴이 시야에 가득했습니다.
『아니 네가 여기 웬일이냐? 지금 몇시지?』 시계바늘은 밤 9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형! 아까 낮에 한 말 취소하세요』 『무슨말?』 『헤어지자는 말 말이예요』 너무나 당돌한 그녀의 말에 무엇에 부닥친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형을 사랑해요. 잘 몰랐었는데 아까 형이 가버린 후 형의 존재가 저에게 너무나 크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제가 형의 보이지 않는 눈과 불편한 다리가 될께요!』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두 눈엔 눈물이 고였고, 비장한 표정에 담긴 그녀의 사랑에 나는 감격했습니다. 그녀의 말은 세상의 어떤 말보다도 솔직했고 아름다웠으며 멋진 사랑의 세레나데로 나를 감동시키고, 영혼의 상처까지 어루만졌습니다. 그녀는 나의 사랑이고 영혼의 치료사로 주님이 나에게 보내주신 예쁜 천사였던 것입니다. 이런 그녀를 와락 껴안은 내 가슴엔 사랑의 무지개가 펼쳐지고 그녀의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사랑하는 그녀와 가족들의 보살핌 아래 수술 후 건강은 차차 회복되었고 바르게 된 다리를 보니 마술에 걸린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사고 직후 병원생활은 고통과 절망의 시간들이었지만 이번 병원생활은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즐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병원내 성당에서 매일 바치는 새벽 미사는 영세 후 얼마되지 않은 미숙한 신앙의 폭을 더욱 넓혀 주었고, 조용한 묵상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나를 뒤덮은 고통과 절망사이로 비치는 주님의 영상은 또렷이 새겨졌고, 간호하는 그녀의 손길에 한없는 평온함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참으로 간사함을 느꼈습니다. 미사, 영적 묵상과 신앙 책들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나는 차츰 그녀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많아졌고 성직자 및 수도원 생활들을 자주 이야기하며 일전에 속삭였던 그녀와의 영원한 약속을 퇴색시키며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매일 수업 마치고 학교에서 병원으로 와 간호하는 그녀에게 수고하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눈물만을 삼키게 하는 나는, 지금 생각하니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지독한 이기주의자였습니다. 그즈음 이렇게 갈 길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나와 마음 아파하는 그녀에게 주님은 당신 뜻을 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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