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형! 우리가 만난지도 십수년이 흘렀습니다. 아마 예비자 교리반이었을 겁니다. 핼쑥한 얼굴, 웃음이 없는 형의 얼굴은 파리하기만 했습니다. 형은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죠. 대여섯살은 위인 형은 내가 체험하지 못했던 삶을 살았더군요. 해양대학을 나와 외항선박의 사관으로 바다를 누비던 분이었습니다. 무릇 남자라면 한번쯤 바다를 동경하게 됩니다. 무한히 펼쳐진 바다를 누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멋들어진 직업이겠습니까?
그러나 형은 외항선원의 비애를 말해주었습니다. 비좁은 선박에서 몇 달이고 바다에 떠 있어야 하는 비애. 거센 파도와 향수와 그리고 끔찍한 선상 폭력이 마음이 유순한 형을 슬프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후에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된 나는 형을 보살피는 일을 맡았습니다.
밀폐된 형의 방을 찾아가 바둑도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죠. 하지만 무려 10년 넘게 앓아온 병은 신앙을 갖는다고 금새 치유될 문제는 아니더군요.
더욱이 형을 보살피던 늙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형제들에게 버림받았습니다. 그 뒤 연락이 끊겼고, 나도 형을 기억에만 간직한 채 M성당을 떠났죠.
지난 2년 전인가요? 찬바람이 불어오던 초겨울 어느날 광화문에서 형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여전히 파리한 얼굴에 구부정했지만, 얼굴엔 맑은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해양대학 동창이 운영하는 회사에 나가고 있더군요. 형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뻤습니다. 신앙심도 돈독해졌더군요.
형과 헤어졌던 10여 년 간 하느님은 놀랍고도 신비로운 은총을 내리신게 분명합니다. 이제 바람이 있다면 형이 오손도손한 가정을 꾸미는 것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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