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네팔 노동자들이 명동성당에서 농성할 때의 일이다.
협상차 방문온 한 정부관계자가『아니 저 사람들을(외국인 노동자)노동자로 대하란 말입니까?』하며 정색을 할 때, 『인간이해(人間理解)』에 대한 깊은 벽과 한계를 느낀적이 있다. 국적, 피부색, 직업의 귀천을 떠나서 인간을 인격적으로 바라보고 대할 수 있는 것도 은총의 빛 안에서만이 가능한 것 같다.
5월말 현재 국내의 외국인 노동자 수는 16만7천5백63명으로 이 중 60%인 10만1백48명이 불법체류자로 밝혀졌다. 합법체류자는 취업비자 소지자 1만3백71명과 산업기술 연수생 5만7천44명 뿐이다. 정부는 작년 네팔 노동자 농성사태 이후 이들의 처우개선을 약속하고 최저임금지급과 산재보상, 의료보험을 적용한다고 하였으나 그 결과는 각 사업장마다 천태만상으로 나타났다.
어느 회사는 최저임금인 3백60불을 지급하는 대신에 식비와 의료보험료 등을 공제하여 실제 수령액은 인상되기 전 임금인 2백10불에 머물게 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해외진출 국내기업들 중 현지공장의 노동자들을「기술연수」라는 명목으로 한국에 들여와 단순노동을 시키며 월 8만~20만원을 지급하는 사례들이 있다. 이들의 신분이 노동자가 아닌「산업기술 연수생」으로 규정함으로써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정부는「고용허가제」를 제정할 계획을 밝혔으나 각 부처 간의 이견으로 전혀 진척을 못보고 있다. 이 제도가 실시되면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퇴직금과 해고수당 지급 등 근로기준법의 상당한 부분이 적용된다. 그렇지만 노동관계법들과 동등하지 않은 이 제도만으로는 이 문제의 근본적인 개선을 이룰 수 없다는 인식에서 교회와 각 인권단체들이「외국인 노동자 보호법」의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과제는 인간을 한낱 생산수단이나 경제적 이득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는 의식과 가치관의 전환이라 하겠다. 비록 이들이「불법체류자」라고 하지만 인간의 기본권은 어떤 처지에서든지 항상 존중 받아야 한다고 교회는 분명히 가르친다(회칙「노동하는 인간」23항: 사목헌장 66항: 팔십주년 17항).
교회가 사회문제에 접근하는 정신의 기초는 자연법이다. 자연법은 남이 우리에게 지워주는 명확한 규범 같은 것은 아니다. 자연법은 성 토마스가 말했듯이 이성적 존재에 있어서 영원한 법에 참여함을 뜻한다. 이 안에는 인간이 자신의 이성적 사고를 통해 찾을 수 있는 그리고 모든 인간이 항상 지켜야 하는 행동의 기본원칙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자연법은 모든 실정법과 윤리규범들의 근거가 된다. 이런 교회본연의 가르침과 국제 노동기구(ILO)의 협약 및 국내 근로기준법 제5조의 내용들이 충실한 제도로서 자리잡아야 한다. 『이민 노동자가 관계법령을 준수하지 않고 그 지위가 정당화될 수 없는 기타의 급부는 과거의 고용으로부터 발생한 권리를 근거로 하여 본인 및 그 가족에게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ILO의 외국인 노동자의 평등한 고용 및 대우에 관한 협약 제143호9조1항).
현대세계를 특징짓는 제변화(mutation)중 하나는 이주(Immigration)문제이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제3세계의 백성들이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정든 고향과 조국을 떠나 대도시나 다른 나라로 이동하거나 종족간 민족간의 분쟁과 전쟁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백성들이 평화와 안정이 보장되는 지역을 찾아 떠돌고 있다. 이 민족대이동은 언어, 사상, 문화, 종교간의 유례없는 교류나 화합 또는 충돌과 갈등을 가져오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이주(Immigration) 현상 안에서 한 시대의 징표를 볼 수 있어야겠다. 즉 우리는 이 현상 안에서 바벨탑의 비극(창세기 11장)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성령강림(사도행전 2,1~13)을 체험할 것인가? 현재의 신 자유주의 경제체제는 국가간의 무한경쟁과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약육강식을 더욱더 심화시키며 인간의 삶과 이 세상을 분열시키고 있다. (「인간은 서로에게 늑대이다」). 반대로 우리가 다른나라 사람, 언어, 문화, 사상, 종교에 개방적이고 우호적일 때 이들과의 만남과 통교는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축복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애환과 소망 안에서 함께 탄식하시고 신음하시는 성령의 현존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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