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좀처럼 몸이 완쾌되지 않았다. 5개월 동안 병으로 고생하다 보니 몸은 더욱 쇠약해 졌다. 그래서 셋째 오빠는 생각다 못해 몸이 너무 약해서 치료가 안되는가 싶어서 보약을 몇 첩 달여주고 영양제 주사도 놓아 주었다. 그 후 나는 차차 몸이 좋아지기 시작하여 먹는 것도 소화가 잘 되었다. 나는 오빠한테 너무 고맙고 죄송했다. 그동안 친구들한테 너무 걱정만 끼치고 신세만 지어 마음이 아팠다. 오빠는 몇 개월 더 먹을 약을 지어 주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여름에는 농사일을 다니다가 가을에는 다시 식당일을 다녔다. 이렇게 지내는 동안 얼마 후 나는 다시 또 큰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노한이시지만 아이들과 가정을 잘 보살펴 주셨던 시어머니께서 쓰러지시더니 말씀도 못하시고 정신을 잃으셨다. 더욱이 시어머니께서는 꼼짝도 않으시고 코만 골면서 2∼3일 주무시고 입도 돌아가더니 몸의 반쪽을 못 쓰실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또 살길이 막막했다. 그동안의 생활이라도 다행으로 생각했는데 시어머니께서 꼼짝도 못하시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병환에 계신 시어머니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시어머니께서 건강하셔야 내가 일을 할 수 있는데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어떻게 살라고 이런 불행이 닥쳐 왔는지 원망만이 앞설 뿐이었다.
왜 아무것도 없는 가정에서 어른 세명이 돌아가면서 이런 우환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프기 전에는 아이들 아빠가 많이 아파서 속이 상했었다. 나는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아직 젊은 나이에 「과댁」이라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많은 약도 쓰고 병원에도 자주 다니도록 했다. 집 사정이 이러해서 시아버지께서 인천 큰집으로 가신후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나는 아무리 살아 보려고 발버둥 쳐보았지만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것마저 뜻대로 안되니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시어머니 병간호를 하면서 나는 일주일동안 한없이 울었다. 그래서 병간호를 정성껏 해드린 덕인지 일어나시어 죽과 물, 우유를 드시기도 하고 벽을 짚고 걷기도 하셨다. 그런데 또 아들이 불덩이가 되어 먹지도 않고 헛소리를 하면서 앓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쪽 팔을 두드리면서 헛소리를 하고 밤이면 누가 부른다고 뛰어나가기도 했다.
나는 겁이 났다. 예전에 할머니께서 무당을 따라 대잡이를 다니셨는데 혹시 이 아이가 잘못되어 할머니 흉내를 내는 것일까. 나는 겁이 났으나 양쪽 방으로 넘어 다니며 병간호를 하자니 너무 고달프고 졸립고 무서웠다. 그러나 시련이 겹치면 겹칠수록 악이 올라 더 담담해졌다. 나는 쓰러지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에게 이이상 더 얼마나 시련을 줄 것인가? 나는 더 큰 불행이 닥쳐도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동안 시어머니께 침을 맞게 해드리고 무당을 데려다 굿도 하고 좋은 약도 많이 썼다. 이렇게 한 10일이 지나니 아들의 몸도 좋아져서 학교에 계속 다닐수 있게 되었고 시어머니께서도 말씀은 못하시고 한쪽만 움직일 수 있지만 많이 좋아지셔서 혼자 다니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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