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은 큰아이가 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큰아이 옥경이가 갑자기 엄마를 돕겠다고 밥도 짓고 빨래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큰아이는 영리하였고 학교에서도 줄곧 우등상을 타는 등 재롱둥이였는데 어린 것이 집안일을 도우면서 고생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병환에 계신 할머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술만 좋아하는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과 우리 식구가 사는 길은 큰 아이와 내가 고생하는 길뿐이었다.
어느덧 농번기가 되어 나는 모내기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다녔다. 이렇게 해서 번 돈으로 할머니 병간호와 생활비에 보태면서 집 텃밭에 고추를 심었다
일을 다니면서 모든 괴로움을 잊을 수가 있지만 집에 있는 날은 속상하고 괴롭기만 했다. 하루는 마음이 심란하여 밭을 메려고 밭에 나가보니 어느새 고추가 빨갛게 주렁주렁 열렸다. 조그마한 나무에 매달린 고추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땅과 고추나무가 그저 고맙기만 했다. 나는 한참이나 고추나무와 속삭였다. 고추나무는 나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었다.
이렇게 지내는 동안 농번기가 끝나 나는 다시 식당에서 일을 했다. 어느덧 큰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나는 돈을 더 벌고 싶었으나 이곳에서는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 아버지는 날마다 찾아와 술값과 쓸 곳이 있다며 돈을 달라고 했다. 이것조차 머리도 아프고 고달팠다. 그래서 먼 곳으로 떠났다. 하지만 돈은 많이 벌었으나 마음과 몸은 힘들고 고달 펐다. 12시가 넘게 밤늦도록 장사를 하다 조금 눈을 부치고 나면 금방 아침 6시가 되어 또 일어나 일을 했다. 그런데 장사를 하다 보니 술도 한잔씩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유혹의 손길도 많았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지 나의 마음은 아이들 3남매를 생각하면서 지냈다. 가끔 집에 와서 식량도 준비해 놓고 큰아이한테 생활비와 용돈을 주면서 할머니를 잘 보살펴 드리고 동생들도 잘 돌보라고 부탁하곤 또 떠났다.
그런데 식당주인은 장사는 잘되어서 좋아하면서도 월급을 제때 주지 않았다. 이렇게 2년을 보내고 그곳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고 심지어 나를 의심하는 것이었다. 주인이 글을 몰라 내가 장부정리를 했는데 장부를 속였다는 것과 자기네 그릇을 가져갔다는 등 의심을 했다. 그러나 나는 외상장부 정리는 내가 했지만 돈을 다룰 때는 항상 주인과 했고 비품도 항상 주인과 함께 정리를 했다. 나는 너무 속상하고 어이가 없었다. 나는 가진 것이 없어서 남의 집에 살망정 언제나 어디를 가든지 내 양심껏 살아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께서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몇 개월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가 삽교천에 있는 회집식당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전에 일하던 곳과는 달라 힘이 더 들었다. 회집은 한식집과는 일이 달라 다시 배워야 했다. 일하는 사람은 많지만 모두 제각각 하는 일이 달랐다. 나는 음식도 하지만 김치 등 밑반찬도 만들었다. 모두 자기 일만 할 뿐 아무도 이런 일을 도와주지 않았다. 무척 힘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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