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 때였다. 여름은 손님을 맞는 것으로 시작되고 끝이 났다.
아는 사람들이 휴가나 피서라는 이름으로 제주를 찾아와, 그들과 어울리고 나면 여름이 지나가고 없었다. 서귀포를 찾는 그들과 한라산을 몇번 넘나들고, 해수욕장을 드나들다보면 그렇게 여름이 가버리고, 태풍소식과 함께 그들이 돌아가고 나면 여름이 끝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번거로운 손님접대가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이었다.
여행은 사람을 발가벗게 한다. 그렇게 마음을 벗고 만나는 시간들이기에 서울에서 겪을 수 없었던 사람과 사람의 살갗을 맞대는 듯한 즐거운 만남이 또한 이어질 수가 있었다.
어느해 여름이었다. 시인 한 사람이 아내와 함께 휴가를 왔다. 그 부부를 차에 싣고 안내를 하며 제주를 한 바퀴 돌 때의 일이었다.
그때 처음 만난 그 시인의 부인 때문에 우리 가족은 얼마나 웃었던가. 그 아내되는 분이, 어쩌면 이럴 수가 있나 싶게 지극히 비(非)시인이었기 때문이다.
만장굴이라면 제주에서 관광객이 들어갈 수 있는 굴로는 제일 긴 굴이다. 종유석이 아직도 자라고 있는, 말 그대로 자연의 신비이다.
그 글을 안내하고 나오면서 남편이 물었다.
『어때요, 참 신비하지요? 자연이란게 참 놀랍지 않으세요?」. 그랬더니 이 부인이 말하는게 아닌가. 「굴이 뭐 별건가요」
서귀포에서의 일이었다. 제주에서는 제일 물줄기가 긴 폭포가 서귀포의 정방폭포다. 민물이 그냥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다. 그곳을 둘러보고 나오다가 내가 물었다. 『좋지요? 난 이 폭포가 제주에서는 제일 좋던데요」.그때 그 시인의 아내가 대답하는게 아닌가. 『폭포가 뭐 별건가요. 물 떨어지는 거지』그랬다. 그건 진리였다. 폭포가 별건가. 물 떨어지는 거지.
그런데 그 부인은 몇년후 그 시인에게서 이혼을 당했다. 그 부인,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았나 모르겠다. 이혼이 뭐 별건가요? 헤어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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