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피는 꽃 가운데, 원추리 꽃이 있습니다. 옛날은 엄나물이라고 불렸던 풀입니다.
옛날에는 우리 어른들이 장독 둘레나 뒷뜰에 심어 놓고 사랑했던 꽃입니다. 이 원추리는 새순을 잘라 먹던 풀입니다. 엄나물이라는 이름도 그렇게 해서 생겨 났을 것입니다.
이 노랑색 꽃봉오리를 머리에 꽂고 다니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남아선호사상이 만들어낸 좋지 않은 풍습이 꽃에까지 배어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에 꽃을 꽂은 여인을 누가 있어 아름답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 아니 우리 땅에서 소리없이 피고 지면서 그렇게 이어져 내려오며 사랑을 받은 꽃들이 다 그러하듯이 이런 꽃들은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꽃이 아닙니다. 좀 멀리서 그윽하게 바라보아야만 그 진정한 아름다움이 보이는 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피고 진 목숨들이 누구를 사랑할 때 그랬듯이 말입니다. 은근함이란 바로 그런 것이겠지요.
이만큼 멀리서 바라보면… 그 환한 빛 속에 근심이 날아가는 날갯질이 들린다고 합니다. 망우초, 근심을 잊는 꽃이라는 그 또 다른 이름처럼 말입니다
왜 우리에게는 이렇게 잊어야 할 것이 많은 것일까요.
잊어야 할 것들이 얼마나 쌓이고 흘러 넘치기에, 꽃에까지 사람의 마음을 기대며 잊고 싶어 했을까요.
그래도, 이 여름에 피고 지는 무궁화를 바라보며 떠올리는 생각이 있습니다. 무궁화는 지는 모습이 정결합니다. 추하든 화사하든, 흩날리며 떨어지지 않습니다.
꽃잎을 오무려 가다듬고 어느 날 소리없이 자신을 마감합니다. 그 어느 꽃이 무궁화의 이 사라지는 품격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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