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7월 내가 병원봉사를 하며 만난 노순례 환자는 52세의 폐암 말기였다. 결혼한지 일년도 채 안되어서 부인이 중풍으로 팔 다리도 못 움직이고 말도 못하게 되어 집까지 팔아가며 치료에 정성을 다 쏟았다. 그러기를 7년, 상황은 악회되어 암세포가 번지기 시작해 수술을 몇 번이나 받게 되었으며 5년이란 고통의 세월이 또 흘러갔다.
겨우 부추겨 한발짝 걸을 수 있는 상태로 퇴원하는 날, 집으로 가던 중 그만 부인을 잃고 말았다. 그 날 이후 전국을 누빈지 40일 만에야 부인을 찾게 되었는데 그동안 보살펴주신 분이 고덕아파트에 사시는 어느 자매님이었다.
그 자매님은 부인을 보살피게 된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했다. 어느날 역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무언가 뒤에서 옷을 잡아당기는 것 같아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다시 갈려면 또 잡아당기는 것 같고 그러기를 세번, 이상해서 주위를 살펴보니 계단 귀퉁이에 보따리를 들고 울고 있는 여자를 보게 된 것이다. 2월 추운 날씨가 어쩐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다가가 물어보니 말도 못하고 겨우 손짓만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 일단 집으로 데리고 갔으며 며칠만에야 손짓 발짓을 통해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병원 이름을 몰라 무작정 찾아다니던 중 39일째 되던 날 국립의료원 수위아저씨가 알아보고 간호사들이 보호자들에게 연락하여 다음날 40일만에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그 후 남편은 열심히 일을 다니며 근근이 지내던 1년쯤 되던 해, 부인은 처음으로 시장에 나갔다가 또 집을 잃어버린 것이다. 또 다시 찾아다닌지 29일만에 어느 교회의 기도원에서 찾았다.
그 이후 지금 12살 된 딸도 있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지내며 동네 일에 헌신적이었다. 자신이 폐암으로 입원하기 전에도 친구가 교통사고로 전신마미가 되어 오갈 데가 없자 자신의 8평 아파트에 모셔다가 틈틈이 목욕시키고 대ㆍ소변 가려주고 밥먹이는 일을 했다고 한다.
2주 후에 그분을 병실에서 만났을때 바보스러우리 만치 천진스럽고 순박한 부인과 더없이 맑고 밝은 키가 큰 딸이 죽음 앞에 있는 아빠를 걱정하기 보다는 사랑으로 가득찬 가족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를 보자 환자는 겨우 일어나 앉으면서 수첩을 찾더니 꽃동네를 알아봐 달라며 친구를 부탁하는 글을 썼다. 자신도 만신창이가 된 몸인데…. 사랑 자체인 살아있는 예수님이었던 것인가?
이틀 후 그분은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조문차 방문한 그분의 중계동 8평 아파트의 조그만 방 영정 앞에는 다 낡은 성경책과 수첩이 놓여져 있었다.
거기서 또 놀란 것은 그 비좁은 집에 부인의 이모님이 함께 살고 있었다. 폐암환자인 자신과 중풍을 앓고 있는 부인, 딸, 대소변을 받아내던 친구, 늙으신 처 이모가 함께 8평 아파트에서 생활해 온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은 고인과의 대화와, 남아 있는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에 무겁기만 했다. 그러나 가난한 생활이지만 가족 모두가 사랑이 넘치고 평화스러워 보였다는 것이 지금까지도 상상할 수가 없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주여! 그분 가족에게 주님이 함께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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