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조선에 오신 주문모 신부와, 최초로 영세하였던 조선 교우들과, 최초의 주교와, 그 부하 두 위 신부와, 최초의 본당인 신부가 다 주(主)를 위하여 순교하셨다. 조선 성교회도 예루살렘과 안티오키아와 로마 기타 다른 많은 교회와 같이, 갈바리아 산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에 그 나라 순교자들의 피를 섞어서 기초를 단단하게 하였도다. 이것이야말로 조선 성교회의 불후(不朽)의 명예가 아니고 무엇이며, 그리고 그 완전한 승리와 불멸의 약속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조선교회사를 저술하던 달레 신부가 역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원고를 써 나가다가, 몇 번이나 감탄하여 붓을 놓고 했다는 말이다.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다시 한번 음미해 볼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한국천주교회의 2백여 년 역사는 가히 순교사라 할 수 있다. 전반부 1백년은 직접적인 박해와 순교의 시기였고, 일제 36년과 동족상잔의 6ㆍ25 역시 유명 무명의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그 결과 1984년에는 1백3위 한국성인 시성식을 교황님을 모시고 이 땅에서 거행하는 감격을 누린 우리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12년이 흐르는 사이에 우리의 상황은 어떻게 바뀌어져 있는가? 주지하는 것처럼 우리 한국교회는 그때를 고비로 교세 증가율이 매년 둔화되고 있는 것은 물론 구도자들의 발길도 크게 떨어졌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주일신자로 가득 채워졌으며 정상적인 신자생활을 지속하는 이는 언제부터인지 3분의 1 남짓한 실정이다. 참으로 우려되는 교회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우리교회의 이처럼 퇴보적인 현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얽혀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인은 순교 선조들의 삶과 영성을 너무나 빨리,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한국성인 시성식이 있었던 1984년 이후 12년 동안 전체 신자의 50%에 가까운 1백60여 만 명이 새로 영세한 신자들이어서 한국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철저한 재교육이 더욱 절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올해 들어 서울대교구를 비롯해 각 교구들이 순교자 현양 행사들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는 사실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달리는 말에 더 잘 달리도록 채찍을 가하는 심정으로 교회당국에 당부하고 싶다. 행사위주의 신심행위를 뛰어넘어 순교신심이 복음화와 교회 쇄신의 실천적 규범으로 제시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 달라는 것이다. 순교신심이야말로 한국교회의 보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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