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야영을 포기하면서 이곳에 오려고 결심했다.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 위해….
22일 그날은 날씨가 무척 화창했다. 차를 타고 오면서 어떤 고생이 있더라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미리내에 도착해서 성지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신부님의 묘소를 참배하고 신부님의 동상 앞에서 묵주기도를 동생과 함께 드리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첫 신부님이 되셨던 대건 안드레아. 내게는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게 한다. 15살이란 어린 나이에 사제가 되려고 6개월간의 죽음 같은 여행과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의 생활. 그럼에도 사제가 되었던 그.
그런 그 앞에서 내가 어떻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신부님의 죽음에서 거꾸로 올라가 청년시절의 신부님을 뵈러 간다. 그 설레이는 마음을 가슴에 안고 23일을 기다리며 하루를 지냈다.
22일은 힘들지 않은 하루였다. 아마 우리 모두 내일 즉 23일의 고통을 생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23일 새벽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내가 일찍 일어난다고 해서 조금 더 일찍 출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간절히 신부님이 걸으시면서 느낀 고통을 체험해 보고 싶었다.
일상속에서 사랑을 베풀지 못하고 소리나 지르고 울고 짜증내고 그런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싶었다. 착하고 동생과 친구들에게 사랑을 주고 주님께 찬미하는 그런 성실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내 삶의 중요한 반환점이 되길 원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계획은 계획이라 우리는 7시30분에 도보를 시작했다. 걸으면서 악마의 유혹을 너무나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포기라는 단어를 새겨놓고 싶지는 않았다. 대건 신부님이 배교를 하지 않으셨듯이.
정말이지 20㎞이상을 걸어왔을 때에는 물집도 발바닥 전체에 났고 정신은 몽롱하고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무한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이렇게 조금 걷는 것으로 세상에서 제일 힘든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까봐 걱정이 된다.
1만여 명의 순교자들이 주리를 트는 고통과 효수형 당하는 고통을 맛보았지만 그들은 끝까지 배교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우리들처럼 덥다고 힘들다고 투정부렸다면 과연 우리가 가톨릭 신자로서 이 자리에 설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도 해본다.
순례를 마치고 앞으로 어떻게 생활하는냐가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그 힘든 과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말이다. 또한 우린 그 결과를 위해 이 도보를 시작했던 것은 아닐까? 이 도보에 참가한 모든 크리스찬 청년들이 좋은 결과를 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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