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은 결코 짧지 않다. 하느님의 무한 경륜으로 보자면 찰라의 순간이겠으나, “기껏해야 칠십 년, 근력이 좋아야 팔십 년”(시편 90, 10)인 인생살이에 비추면 최소한 서너 세대에 걸치는 긴 시간이다. 본보가 창간 85주년을 맞는 4월 1일. 한국 가톨릭 언론사의 효시를 연 기념일이 하필이면 만우절이라는 점은 좀 공교롭긴 하지만, 그 역사적인 의미를 자축하면서 긴 세월을 반추하는 일은 중요하다.
언론의 사명 중 하나가 권력을 향한 날선 비판이지만 교회 언론의 사명은 일반 사회 언론의 그것을 때로는 넘어서기도 하고, 못 미치기도 한다. 직필로써 권력화된 권위에 비판을 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는 사회 언론에 못 미칠 것이며, 사랑과 보편적 진리를 선포하는 일에 매진한다는 점에서는 그를 넘어선다. 때로는 ‘기관지’로서의 한계에 답답함을 느끼지만, ‘기관지’의 미덕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기만적인 자기도취만은 아니다.
어느 경우에도 결코 소홀할 수 없는 일은 주기적인, 때로는 습관적이 되기도 하지만, 냉철한 자기반성의 노력이다. 교회 언론으로서의 예언자적 소명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던가 하는 성찰이 필요하다. 혹자는 세류에 편승하고, 억압에 굴했다며 눈을 흘기기도 할 것이지만, 겸허한 자세로 이러한 비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근현대 1백년의 대부분에 교회의 역사를 함께 하고, 이를 낱낱이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창간의 의미는 절반 이상 지닌다.
1백년을 내다보며, 간혹 신문의 역사를 뒤적거려본다. 신문 지면에 나타난 주요 기사들을 보면 당시의 시대상을 읽어볼 수 있다. 미처 기사로 챙기지 못했어도, 차마 저항을 감수하지 못했다고 해도 행간의 의미는 능히 당시의 엄혹한 시대상을 짐작하게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은 후대의 비판 대상이 되곤 하는 사건들이 어쩌면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는 반대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일제의 억압적 상황, 해방공간, 독재 하에서의 교회의 처신에 대한 성찰과 비판은 이제 낯설지 않다. 근현대사 안에서 고위 성직자들이나 교회 당국이 종종 민족의 일원으로서보다는 방관자적 입장에 서 있었다고 비판된다. 사회 참여에 대한 교회 당국의 자세는 대체로 소극적이었고 불의한 사회 구조에 항거해 투신했던 평신도들은 교회 당국에 의해 단죄 받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안중근 의사에게서 볼 수 있다. 시시비비 이전에 교회의 사회적 참여와 관련해 대체로 지도층은 소극적이었고 평신도들은 오히려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는 듯하다. 주교회의를 위시한 교회 공식 지도층은 비교적 적극적인 사회적 발언을 정당한 것으로 여기는 듯한데, 오히려 적지 않은 평신도들이 이러한 대사회적 발언에 거부와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 지나간 역사에 대한 평가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함부로 행할 것이 아니겠으며, 오늘날 교회 안의 이러한 상황 역시 경솔하게 판단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가 사회와 유리되어 초월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도, 현대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도 어긋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최근 멕시코와 쿠바 방문길에 나선 비행기 안에서 교회는 “정치권력은 아니”지만, ‘사회 정의’를 증진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엇을 ‘사회 정의’라고 ‘정의’해야 하는가이다. 토론을 피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토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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