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가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어서 가서 짧은 만남 속에서 정든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형제자매들이 그립습니다. 신부님 수녀님을 뵙고 싶은 것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지금도 눈을 감으면 초등학교 교실이었다는 숙소의 창밖으로 보였던 검은 윤곽의 산과, 흐르는 듯 멈춘 듯 조용한 아우라지강의 밤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떠나오는 날 마지막 미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윤회의 포옹은 용서와 화해, 사랑의 나눔이었고 은혜의 강복이었습니다.
나는 고백합니다.
처음 수련회의 안내 말씀을 들었을 때 대단히 어려운 일로 생각했습니다. 보수적인 성당에서 주관을 하고 서로 교류가 없는 교우들이 얼마나 호응할 것이며 어떻게 기획할 것인가를 의심치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나의 기억 속에는 불과 몇 년 전에 발생한 수녀님들의 해변에서의 익사사고와 어린 신자들을 파도 속에서 구하고 익사하신 신부님의 희생이 또렷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선뜻 이 수련회에 다섯 식구가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 결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놀랐습니다.
참여 인원에 놀랐고, 안내 책자를 보고 놀랐습니다. 도착지에서는 준비한 시설과 봉사자들의 활약에 놀랐고 산과 강이 어우러진 풍경에 놀랐습니다.
두 번째 고백입니다.
나는 성당에 미사 참례하러 다니는 게 싫었습니다. 가족들을 태워다 주고 태워 오는 기사와 같았습니다. 조그만 약속도 있으면 미사를 빠졌습니다. 형제들과의 교류도 싫었습니다. 아무런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전 구역 반장님께서 전화로, 우편으로 그렇게 열심히 초대하신 형제회에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봉헌금이 아까웠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수입액을 비례로 계산하면 부끄럽게도 맨 꼴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얼마 전에는 집사람이 어렵게 모아서 새로이 설립된 성당의 장학회에 평생회원이 되라고 준 1백만 원을 써버렸습니다. 꼭 갚겠습니다.
남에게 베풀 줄을 몰랐습니다.
남의 잘못을 용서할 줄도 몰랐고 나의 잘못을 스스로 인식할 줄도 몰랐습니다. 나는 엉터리 사이비 신자였던 것입니다.
주님께로 한 발짝만 가까이 다가가렵니다. 그렇게 한발자욱씩 다가가서 마침내 주님의 발끝에 얼굴을 묻고 통회의 눈물을 흘릴날을 기다리렵니다. 아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도록 노력해 보렵니다.
수련회장에서 나보다 못할게 하나도 없는 냉담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줄줄 흘리는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신앙심은 놀랍게 변할 것 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배우렵니다.
냄새가 지독해서 용변을 볼 수 없는 화장실을 씽크대처럼 깨끗하게 청소하신 봉사자들의 정신을 배우렵니다.
살이 익어 버릴 듯 뜨거웠던 철수하던 날, 몇몇 봉사자들만이 엠프시설을 철거하고 천막을 걷고 조리대를 치우고 본부석을 정리하고 모든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우리가 모르게 한 그들의 희생을 분명히 주님께서는 보셨을 것이고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첫날, 아침미사에 나는 영광스럽게도 신자들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산천경계 수려한 작은 낙원으로의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이 수련회를 통하여 찌든 때 처럼 우리들 마음에 낀 미움과 갈등의 때를 저 강물로 씻어 주시고 그 자리에 맑고 깨끗한 사랑과 화해의 마음을 주소서』
「96년 하계수련회」, 보잘것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저의 교만함을 용서해 주소서.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은혜로 충만된 이런 기회를 주신 신부님과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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