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도 우리 앞에 「피정」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문이 세워졌다. 타 본당 친구들의 캠프 자랑도 이젠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만큼 우린 여름피정에 익숙해져 있는 듯 싶다.
맛있는 과자와 음료수 대신, 가방에는 달랑 여벌 옷 몇 벌과 미사도구만을 넣고 손에는 묵주를 든 채, 잘 먹히지도 않는 아침밥을 꾸역꾸역 두 그릇이나 먹고 성당으로 향했다.
안양 라자로 마을의 성 아론의 집에 도착 그때부터 길고도 긴 1박2일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작년 여름 피정의 일들을 떠올리며 어느 정도 각오도 했었지만, 나이도 한살 더먹고 그만큼 신앙도 자란 듯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세끼 식사를 거르며 라자로 마을의 나환우들에게 신발을 마련해 드리고, 찌는 더위 속에서 선풍기 작동도 거부한 채 무릎을 꿇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수없이 묵주알을 돌렸으며,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있는 힘껏, 마을을 떠나 보낼 듯이 외쳤던『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모님 사랑합니다』라는 말들. 관 속에 들어가 죽음도 경험해 보고, 커다란 십자가를 지고 아스팔트의 라자로 마을을 무릎으로 기며 십자가의 길을 바치던 우리들….
그땐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내게 얼마나 뜻 깊고 값진 시간들이었나. 그 모습들에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된다. 책상 위에 붙여놓은 아침 저녁 삼종기도, 늘 주머니 속에 있는 묵주. 점점 헤이해짐을 느꼈던 내 신앙생활에 얼마나 큰 활력소가 되었는지…. 나환우들과의 다과잔치 때에, 내가 함께 했던 한 할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난다.
『행복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거야.』마음속에 늘 큰 행복을 담고 계신 듯, 그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며, 다시 한 번 내게 주어진 이번 피정에 감사하고, 앞으로의 내 신앙의 불변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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