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다음 구절이 가물가물하기조차 한 이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사제관 들어가는 길 양옆에 과꽃이 피었습니다. 그저 지나가며 있는 꽃들과 달리 왠지 정이 가는 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작은 마당이나마 이곳저곳 옹기종기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고추, 깻잎, 옥수수대 등등 이번 여름과 맞이하는 가을은 유난히 흙을 느끼며 살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심고 키우기보다 누군가 관심을 갖고 흙을 대하는 분이 있어서 그럴 수 있었습니다. 어디엔가 주변에 과꽃이 늘 있었고, 고추나 깻잎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더 정이 가는 것은 바로 그 성장을 저 자신이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루아침이 다른 그 성장을 바라보며「모두 다 이처럼 소중한 과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땅에서 나는 것이나, 바다에서 나는 것이나 대부분의 것들을 우리는 완성품부터 대하게 됩니다. 씨앗부터 커나가는 것이 아니라 결실을 보고 그 과정을 거꾸로 되짚어 나가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의 만남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뒷전에 둔 채 지금 그 사람이 어떠한가를 먼저 바라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세상에 어떤 것보다 하느님께서 먼저 사랑하시는 인간부터 시작하자고 하는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를 반복하다보니 이름만이 남게 됩니다. 그 과정과 속성은 다 사라진 채 말입니다. 그래서 뿌리없는 줄기, 줄기없는 꽃, 꽃없는 열매만 바라보게 됩니다.
과정이 더 중요한 사회, 씨앗이 더 귀한 세상, 드러내 보이는 정렬된 하느님 나라보다 속살깊이 만나는 기쁨의 나라이기를 우리는 소망합니다. 부디 과꽃을 꽃시장에서만 찾는, 완성품을 모든 것의 시작으로 보는 어리석음에서 해방되기를 우리는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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