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주요 일간지들을 비롯해서 TV뉴스를 통해 태아의 성감별을 해준 산부인과 의사들이 무더기로 구속된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의료인들이 구속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니, 의료인들의 성감별 행위에 대한 검찰의 강력한 법집행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의 임부에 대한 성감별 행위뿐만 아니라 진료를 통해 알게 된 태아의 성별을 임부나 그 가족, 다른 사람이 알게 해서도 안된다고 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비교적 높은 벌칙으로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일천만원 이하의 벌금형, 그리고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를 위반한 의료인의 면허까지도 취소할 수 있는 강력한 법규이다.
필자는 이 사건에 대한 보도와 논평들을 접하면서 사건의 핵심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인간생명경시 풍조
대부분의 논평들이 태아의 성감별 행위와 그에 따르는 여아 낙태를 심각한 성비 불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현대 사회의 심각할 정도의 인간 생명의 경시현상이다. 곧 사회학적 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문제인 것이다.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인간 생명에 대해 너무 쉽게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는 이 사회의 미래 모습은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실상 이 문제는 법의 문제라기보다는 의료인들의 윤리의식의 문제이다. 일부 의료인들의 이 사건에 대한 시각은 어쩌면 상당히 부정적일지도 모른다. 의료인들의 의료행위에 대해 법이 개입함으로써 나타나게 될 심각한 파장까지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인간다운 삶과 생명보호를 위한 의료인들의 사명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철저한 윤리의식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기원전 4~5세기 경에 살았던 히포크라테스는 『나는 누가 요청하더라도 죽음에 이르는 약은 주지 않겠으며 여인에게 유산시키는 도구를 주지 않을 것이며…순수하고 성스럽게 나의 인생과 의술을 지키겠다』는 그 유명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후배 의료인들에게 남겼으며 오늘날 모든 의료인들은 이 선서를 자신들의 직업윤리로 삼고 있지 않는가?
만일 의료인들의 사회에서 이렇듯이 숭고한 직업 윤리의식이 무너질 때, 그럼으로써 중대한 윤리적 오류가 한 사회에서 횡횡한다면 그 오류에 대해 국가는 방관자일 수 없다. 왜냐하면 국가의 존립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윤리의식의 기본 위에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생명의 보호를 위한 법의 영역은 틀림없이 존재하며 태아의 성감별 금지법이 이에 해당된다고 본다. 곧 생명 보호를 위한 예방차원에서의 효과를 위해서이다.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법의 효력은 이제 사건의 결과에만 매달리기 보다는 예방적인 차원에서의 규범적인 효력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의료인들의 구속 사태까지 몰고 간 위 사건을 볼 때 인간생명의 보호를 이제 단순히 의료 윤리의 차원에 맡길 수 만은 없다는 슬픈 현실이기 때문이다. 법의 효과가 생명문화를 지키는데 일조를 한다면 이제 인간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행위들이 의료윤리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 명확해지는 것이다.
예방차원 입법 필요
우리는 단순히 일부 의료인들에게서 행해지고 있는 태아 성감별 행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실상 오늘날 의료기술의 영역에서 아무런 윤리의식 없이 행해지고 있는 인간생명의 온전성에 대한 침해는 엄청나다. 의료기술의 영역에서 시도, 실험되고 있는 인간 배아의 동물 자궁에서의 착상이라든가, 인간 배아를 위해 인공 자궁을 만들어내는 일, 복제인간의 가시성을 현실화시킬 수도 있는 수정란의 인위적 복제 등을 위한 의료인들의 행위가 인류의 미래에 미칠 엄청난 파장을 예상할 때 「수정란 보호법」과도 같은 법의 입법은 매우 시급하며, 이 또한 인간생명의 보호를 위한 예방 차원에서의 입법일 것이다.
철저한 직업윤리
그러나 법 차원에서의 예방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인간생명을 직접 담당하고 있는 의료인들의 올바른 생명문화를 위한 철저한 윤리의식이다. 「우리는 인간생명의 보호를 위해 낙태 시술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선언을 할 수 있는 양심적인 의사들의 집단이 생겨난다면 인간생명의 보호를 위해 얼마나 큰 실천적 힘이 될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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