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성당 문턱에 발을 딛게 된 것은 1992년 9월 어느 날 오후였다. 처음 만난 사람(신부님)은 농부같이 촌스러우면서도 평소에 알던 사람처럼 친근감 있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난생 처음 신부님과 마주한 사제관, 열살된 외아들을 잃은 슬픈 마음으로 짧기는 했지만 개신교에 약 1년간 다닌 적이 있다. 잠시 후 신부님께서 담배를 권하길래 얻어 피웠다. 목사님과의 만남과는 너무 달라 헷갈렸다. 대화는 2년간 투병생활을 하다 의사의 진료 부주의로 숨진 아들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줄곧 담배를 피우는 나의 자세는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미친 사람처럼 언행이 거칠었다. 신부님께서는 내 마음 깊숙이 상처받은 곳을 확실히 이해하시면서 흥분한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씀을 시작하셨다. 3시간동안 이어진 대화는 처음 만난 신부님께 화풀이 하는 듯 했고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왔다.
그 후 예비자 교리가 시작되기 전 저녁미사에 참례하였다. 우리 부부 옆자리에는 수녀님께서 매일미사책을 펴 놓고 설명을 해 주셨다. 나는 미사 중 개신교에서 느끼지 못한 죽은이를 위한 기도(부활의 희망속에 고이 잠든…)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 부부는 미사가 끝난 즉시 예비자 교리반에 입교했다. 그 후 매주 목요일 저녁과 토요일 저녁은 미사에 참례하고 일요일 오전에는 개신교에 다녔다.
나는 길지는 않지만 개신교에 나가면서 고액 헌금자로서 남을 돕는 일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은 부지런한 신자로서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등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고, 남다른 예우를 받으며 어깨 힘주는 팔푼이 신자인 나를 부러워하는 자도 있었다.
약 3개월간 개신교와 천주교에 나가면서 신앙적 목적과 믿음의 방법, 목사님과 신부님을 인격적으로 저울질하며 기회주의적 갈등속에서 신앙의 선택을 확실히 정리해야 할 시간이었다.
91년 12월 21일, 정든 개신교 신자들과 헤어져 성당 쪽으로 발길을 돌릴 때 시원섭섭함을 금치 못한 채 세례를 받았다.
영세 후 교무금을 책정하는데 나는 수녀님께 월10만원 정도 내겠다고 말했다. 수녀님께서는 다시 생각해 보고 액수를 반으로 줄이든지 소액을 책정하라고 말씀하셨다. 개신교와 달리 나를 무시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주일 중심미사에 처음 참례했다. 신부님의 시선이 가까운 앞자리에 앉았다. 봉헌순서가 되자 만원짜리 2장을 펴들고 신부님의 시선을 최대한 의식하며 봉헌했다. 봉헌금을 꼭 움켜쥔 채 봉헌하는 다른 신자들과는 대조적이었다. 봉헌성가 시작부터 끝까지 눈을 감은 채 앉아계시는 신부님을 의식했지만 나는 신부님의 시선을 받지 못했다.
나는 이 글을 쓰는 순간 부끄럽지만 참새처럼 작은 가슴에 문을 열었다. 겸손되지 못한 지난 예비신자 생활에서 영세과정에 이르기까지 경솔했던 내 자신을 한 순간을 정리하면서 내가 봉헌하는 봉헌금은 과부의 동전 한 닢과 같기를 바라며 하느님과 나만이 아는 비밀로 접어두고 항상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겸손과 용서를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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