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지금 도보순례하고 있는거야?』
다섯살바기 아들 요한이 조금 멀다싶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슈퍼마켓에 따라나섰다가 가던 길을 멈추고 엉뚱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봄이 멀기만 했던 지난 2월 성지순례에 나서기로 작정하고 체력훈련을 겸해 겨울바람 속에서도 짬짬이 걷기 연습을 했던 엄마와 함께 한 기억이 선뜻 되살아난 모양입니다.
지난 9월15일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뜨겁게 치렀던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백50주년 기념 신앙대회가 언뜻 생각납니다.
김대건 신부를 포함한 순교하신 신앙 선조들의 열절하신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티끌처럼 보잘 것 없는 신앙을 감히 견주어 보았던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저는 이 땅에 피를 흘리면서 하느님을 증거하였던 신앙 선조들의 향내나는 발길을 따라 걷게 한 「하늘에서 땅 끝까지」(주평국 신부 지음)를 펼쳐놓고 읽고 또 읽습니다.
새남터 성지에서 제주의 정난주 마리아의 묘역까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성지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은 주평국 신부님의 3년여에 걸쳐 땀흘린 답사와 연구로 완성됐고 페이지마다 성지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대로 옮겨져 있습니다.
이 책에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은 제가 걸어온 그림자 또한 순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아세례를 받고 관면혼배로 소극적인 신앙생활을 하다가 하느님과 잠시 멀어져 있을 즈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어린 남매를 잃는 참담한 일을 겪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는 하느님에 대한 한없는 원망으로 이어졌지만 여전히 끈끈하게 신앙을 지켜 오셨던 친정어머니의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은 제가 냉담을 풀고 하느님께 백기를 들게 하셨고 『주님은 정말 사랑이십니다』라고 눈물의 고백을 털어놓게 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면 느낄수록 이 땅에 하느님 계심을 목숨 바쳐 증거한 순교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들었고 그들의 숨결을 더듬어 한곳 두곳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불편한 교통ㆍ전화번호 변경 등으로 성지 찾기가 수월치 않았던 탓에 이 책은 「길잡이」그 이상이었습니다.
피땀 흘려 사목활동을 하시다 돌아가신 최양업 신부님과 그 부모님의 순교과정, 이 루갈다의 동정부부 생활 등은 그 구절구절이 가슴을 저미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특히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 마리아는 겨우 두살난 젖먹이 아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유배갈 때의 아들에 대한 모성애를 생각하면 울컥 목이 메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먼저 데려가신 아이들 대신 마흔이 된 제게 다섯 살 된 아들 요한과 두 살바기 안젤라를 다시 보내주셨기에 「늦동이 엄마」인 저는 세상 무엇보다 아이들이 하느님의 충실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신앙교육을 가장 우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긴 하지만 제가 성지순례에 나설 때는 꼭 함께 데려가곤 한답니다. 그런 가운데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순교자들의 불씨를 이어 받을 수 있고 하느님의 아들딸로 잘 자라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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