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8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사형제도를 규정할 형법 250조 등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사형은 현재로서는 필요한 제도로서 헌법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애매모호한 결정을 내렸다.
그 근거로서 첫째 정당한 이유 없이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거나 그에 못지 아니한 중대한 공공이익을 침해한 경우 국법은 타인의 생명이나 공공이익을 우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형벌로서의 사형이 우리의 문화 수준이나 사회 현실에 미뤄 지금 당장 이를 무효화 시키는 것이 타당하지 아니하므로 현행 헌법 질서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법이란 유용성과 필요성에 의해서 제정되고 폐기되지만 사형문제에 있어서는 사형제도에 바탕이 되는 좀 더 구체적인 법철학적인 논의가 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으며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것을 법의 유용성과 필요성으로만 판단한 느낌이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인간의 존엄성 때문에 사형을 폐지하였다. 그 바탕이 된 논리는 『인간의 존엄성은 더 이상 법률적인 정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인간의 존엄성은 불가침적인 동시에 시간과 공간에 좌우되지 않는 인간 본성에 근거하는 것이므로 사형은 이간의 이러한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국가 공권력의 의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면에서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서 반박해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먼저 이번 결정은 사형을 타인의 생명과 공공이익의 침해에 대한 국가의 보복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 국가가 지닌 형벌의 의미는 보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인 사회의 질서보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고 공공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력을 가능한 제거하기 위한 것이며 사람들에게 평화스럽고 안전한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하려는 목적을 위해 형벌이 집행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형을 집행한다고 해서 이러한 목적이 채워지지 않으며 국가가 이러한 보복의 기능을 대신해 주는 그러한 기관이 될 수도 없다.
그래서 사형 제도의 폐지를 위한 최초의 저서를 남긴 베카리아 (CㆍBeccaria)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법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방지하는데에 존재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법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사회 계약설에 의하면 사회구성원 각자는 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 자기 자유의 한 부분을 제공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생명까지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따라서 『국가가 보복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도 근거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따르면 사형은 인간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보복심을 제도화된 폭력을 통해 국민을 살해하는 것이며 사람들 안에 보복의 악순환을 공적으로 부추기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형벌의 보복기능에 법철학적이며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한 칸트(IㆍKant)나 헤겔(GㆍWㆍFㆍHegel)의 이론도 그들의 본고장 독일에서조차도 거부되어 사형을 폐지한 마당에 아직도 이러한 보복 논리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법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아직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권한은 하느님에 속한다는 신앙의 신조를 고백하기에 신법(神法)에 속하는 인간 생명에 대한 것을 하위법(下位法)에 속하는 인정법이나 실정법으로 규제한다는 것은 바로 인간의 오만 불손한 하느님께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공공이익을 내세워 범죄자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은 윤리 신학적으로 볼 때 평상시가 아니라 적어도 국가의 위기 상황이나 전시, 비상 사태시에만 한정되며 그리고 이러한 경우에도 사형이 아닌 다른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보아도 불가능한 최악의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형이 아닌 다른 방법이 없음이 증명되지 않는 한, 그리고 평상시의 이러한 국가의 정당 방어로서의 권리는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형이상학적인 공공이익을 위해서라는 이론은 국가가 마치 육체 전체의 건강을 위해서 병든 부분을 도려내는 전체성의 원리를 국가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그 발상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전체성의 원리는 인간의 건강을 위한 논리이지 인격체가 아닌 국가 조직에 이러한 이론으로 적용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인간적인 가치와 영혼 불멸의 존엄성 안에서 국가를 능가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의 문화 수준이나 사회 현실이 어느정도 발전되고 안정되어야 사형을 폐지할 수 있는가? 그 잣대가 무엇인가? 또한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보복으로서의 사형을 인정하고 있는 한 국민의 법 감정은 자신안에 있는 보복의 감정과 일치해 버리기에 절대 사형의 폐지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법이 이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감정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이 참다운 법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법은 이성의 발로이지 감정의 발로는 아니지 않는가? 따라서 국가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문화수준을 퇴보시키고 사회현실에 더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지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문화수준의 상승과 사회현실의 발전은 오히려 법의 강화나 사형제도의 강화에 있는것이 아니라 인간생명을 존중하는 사회전반의 환경과 가치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선이 아니겠는가.
선진국의 많은 나라들이 사형을 폐지하거나 집행하고 있지 않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국제 인권규약이나 국제 연합에서도 사형폐지를 권고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결정은 시대를 역행하는 결정이며 동시에 법철학적인 기본이 없는 결정이며,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것을 법의 유용성과 필요성으로 판단하는 것이기에 분명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