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건이 사생결단을 내자는 사람들을 빗대어 사용되는, 경구에 가까운 말이 있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든다.” 풍자와 해학이 담겨 있다. 한껏 성이 나서 끝장토론을 벌이거나, 멱살을 틀어쥐려던 상대방은 이 한마디에 하릴없이 혼자 열낸 꼴이 된다.
웃자고 한 말이라는데, 웃는다는 것은 뭘까? 성경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도 있다. 예수님도 인간이시고 희로애락의 인간적 감정을 누리셨을 것이다. 워낙 중책을 맡으셨기에 웃음을 즐기시거나 남을 웃기시기에는 여유가 없으셨을 듯하다. 십자가의 고배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셨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종종 예수님은 품격 높은 유머를 구사하셨다.
우선 적을 제압하는 언어의 구사는 거의 예술이다. 무슨 권리로 성전에서 가르치느냐 묻는 율법학자들에게 예수는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인지,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를 되물었다. 답하지 못하는 그들을 예수는 “그럼 나도 대답하지 않겠다”며 돌려세웠다. 예수님은 귀신들의 유니폼인 흰옷을 입고, 발 없는 유령처럼 물 위를 가로질러 제자들에게 다가갔고, 부활 후 겁에 질린 제자들에게 문도 열지 않고 불쑥 다가가 “평화로우냐!” 하신다. 모르긴 몰라도 제자들은 졸도 직전까지 갔으리라. 무척 짓궂다.
하지만 예수님의 유머는 헛된 농이나 우스개를 넘어서는 조건들을 담고 있다. 우선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이심은 유한한 인간 존재로 하여금 놀라움과 경탄으로부터 신뢰를 끌어내시려는 배려였다. 아울러 그분의 유머는 진리에 대한 확신에 바탕을 둔다. 하느님께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진리에 대한 확신 없이 어찌 십자가를 통한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설을 자아낼 수 있었을까?
또 하나는 개방성이다. 당대의 모든 사회적 관습과 전통에 대한, 파괴적이라 할 정도로 활짝 열린 자세를 보여주신다. 어떤 경직된 전통과 관례도 하느님의 진리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엇나갔을 때에는 능히 그 틀을 벗어나도 좋았다. 구원의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열려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유머는 능수능란했고, 유연했으며, 품격이 높았다.
종종 우리는 그저 웃자고 하는데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본다. 흔한 예로 연예인들, 특히 개그맨들이 종종 고소나 사찰의 대상이 된다. 당사자들에게는 험한 꼴이겠지만, 이제 그리 신기하지도 않다. 종교인들 역시 지나치게 예민한 사례들이 있다. 약간 “신성모독적”인 영화에 대한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의 남발이 그러하다. 종종 타 종교의 특정한 종교적 기념의 시기에 그 종교의 상징물을 훼손하는 일은 웃자고 하지도 않았는데 죽자고 달려드는 격이다.
이유는 뭘까? 고질병인 흑백논리? 아니면 살기가 어려워 더 심해진 고도 생존 경쟁의 심리 탓일까? 살기가 팍팍해서 웃을 여유조차 없어진 것일까? 예수님의 유머 감각에서 능히 그 답을 추정할 수 있겠다.
한 가지 이유는 사랑의 결여와 그로 인한 관용의 상실이다. 상대를 아끼고 귀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데, 웃어줄 이유도 웃겨줄 이유도 없는 것은 당연하다.
진리에 대한 확신보다는 맹신과 아집이 또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확신은 곧 상대방의 확신에 대한 선의의 존중을 동반하지만, 아집은 폐쇄되고 경직된 마음을 드러낸다. 내 확신이 이유가 있듯이 상대방도 분명히 이유와 근거가 있을 것임을 인정, 사랑으로 깨우치려 하기보다는 단죄하고 윽박지를 생각밖에 없을 때, 죽자고 달려든다. 자신도 상대방도 몹시 피곤해질 일이다. 웃자고 할 때는 웃자. 따지는 것은 다 웃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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