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받을 즈음 신부님께서 각자의 본명을 정해 오라고 하셨을 때 무척 난감하였다. 성인들의 이름과 생애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었을 뿐더러 베드로, 바오로 같은 널리 알려진 본명보다는 다른 이름을 고르려는 어줍잖은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안젤로였다.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안젤로 성인은 한분이 아니고 그 축일도 나의 생일 등과는 무관하고 보니 별 인연이 없는 듯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친근감이 들고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도 그 뜻이 천사를 의미하고 있고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각가, 건축가겸 시인이었던 미켈란젤로도 연상되어 흐뭇했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지금껏 주위에서 안젤로라는 본명을 가진 분을 별로 볼 수 없었다. 작년인가 직장동료 한분이 동갑나기에 안젤로임을 알게되어 반가웠고 수원교구장님의 본명 또한 그러하셔서 수원교구에서 미사에 참례할 때면 공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듯 분에 넘치는 본명을 얻었지만 거기에 값하는 신앙생활을 했는가 라는 물음에는 얼굴이 붉어진다. 학자성인의 본명을 쓰는 신자답게 학문연구에 온갖 심혈을 쏟았는가 하면 자신이 없다. 성인의 삶을 조금이라도 본받아 생활과 이웃에 실천했는가도 그 또한 석연치 않다.
그렇다면 내 본명은 교회 관련문서에 적어놓고 인사나눌때 쓰는 대외용은 아니었는지, 십수년간 지녀오는 이름인데 무엇 하나쯤은 의식적으로라도 수호성인의 미덕과 신앙자세를 본받는 마음가짐을 지니고 살아야겠다.
대림주일이 시작되었다. 신앙의 연말결산을 해야 할 시기에 이르고 보니 내게 자기의 이름을 내주시나 안젤로 성인께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사도신경에서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다고 고백할 때마다 나를 지켜보실 성인들의 눈길을 느낀다.
지금까지 수고해 주신 이규식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주부터는 소설가 유영숙씨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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