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현실
지난 며칠 사무실에서, 출근하면서 어르신을 여러분 만났다. 그분들은 모두 분노를 표현하셨다. 개인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적지 않은 어르신들이 가슴 속에 깊은 분노를 간직하고 계신 듯하다.
자식과 가정, 직장과 사회를 위해 청춘을 바쳐 일했는데, 그분들이 경험하는 노년의 현실은 꿈꾸어 오시던 것과 다르다. 장성해 자기 가정을 꾸린 자녀들과의 관계도, 이웃이 어르신을 대접하는 문화도, 당신들 건강이나 주머니 사정도 기대와 너무 다르다. 한편으로 자녀세대는 직장에서의 경쟁과 자녀교육을 위한 비용부담에 쫓기고, 한 번 직장을 떠나면 다시 같은 일자리로 돌아가기가 무척 어려운 경직된 노동시장, 훌쩍 높아져 버린 소비, 여가, 문화에 관한 개인의 바람을 채우기 힘든 현실과 같은 것에 좌절한다. 거기에 어르신들 만성 질환이나 치매가 겹치면, 그 가정은 그 짐에 짓눌려 버린다. 세대 사이의 갈등이 가정에서 시작되어 가족 간 사랑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을 뿐 아니라, 가정이 어르신 학대가 가장 자주 일어나는 장소로 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모든 사회구성원 사이의 연대를 통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도입했다. 제도 도입의 건전한 취지와 달리 이마저도 어르신과 그 가족들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을 뿐 아니라, 장기요양시설과 기관에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주고 있다. 우선 장기요양보험료가 적은 탓에 많은 수발을 필요로 하는 어르신들 경우 자부담이 적지 않다. 장기요양기관의 수는 충분한 편이지만,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에 관한 정보는 알기 힘들다. 누구나 일정한 자격만 갖추면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게 하면서, 사람들이 이 분야가 마치 경제적 이득을 얻는데 유망한 업종인양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공정한 경쟁을 펼치도록 하기 위한 전제조건, 곧 제공되는 서비스에 관한 홍보,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정보 제공, 잘못된 경쟁을 규제하기 위한 조치, 장기요양보험을 운영하는 기관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 등을 갖추지 않았다. 또 사회보험에 투입되는 재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르신들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는 요양보호사 양성과 처우에 관한 기준을 너무 낮게 잡았다.
독일의 수발보험
1995년부터 수발보험(Pflegeversicherun
g)을 도입한 독일은 2008년 수발보험 개혁을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개정한 핵심내용은 첫째 가정에서 어르신을 모시는 사람을 위해 수발 관련 전문 정보를 제공하는 수발지원센터를 지역마다 설치하고, 개인이 이런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다. 둘째 어르신을 수발하기 위한 휴가제도를 도입하고, 같은 이유로 휴직하는 사람이 6개월까지 사회보험에 가입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셋째 지역에서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자조그룹이나 봉사단체를 만드는 것을 장려하도록 했다. 넷째 치매 및 다양한 이유로 일상생활이 힘든 분들에게까지 수발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폭을 넓혔다. 다섯째 수발보험에서 지급하는 급여를 단계적으로 인상했다.
각 나라마다 경제 여건이나 사회인식이 다르지만, 독일이 이런 노력을 하게 된 이유가 가정에서 부모님을 모시려는 사람을 돕고, 신체적 수발 외에 보호가 필요한 치매환자와 그 가정의 어려움을 지원하며, 수발을 필요로 하는 어르신의 가족이 서비스를 받을 시설을 찾을 때 각 시설의 서비스 품질에 관해 알고 싶어 하는 욕구를 채워주려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장기요양보험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부모·자녀 간 사랑 표현해야
어떤 제도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어르신들께서 기대하셨던 대로 자녀들과 한 집에 살면서 정성어린 효도를 받고, 손자 손녀들과 함께 즐거운 여가를 보내는 것은 일자리를 쫓아 수시로 사는 곳을 옮겨 다니는 요즘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어도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향해 가진 사랑을 표현하고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은 인간의 기본적인 의무이자 권리일 것이다. 사회가 추구하는 목적이 공동선, 곧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자기완성을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 생활 조건의 총화”(제2차 바티칸공의회 「현대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 26항)라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의무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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