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레지오 마리애에 유감이 있을 게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해, 일흔 즈음에 세례를 받았다. 그 당시 우리는 서울 변두리 소박한 동네에 살았다. 가슴 따뜻한 이웃 자매님들이 잘 돌봐주어, 어머니는 이런저런 신앙활동을 하며 행복해했다. 하루는 어머니가 욕심을 냈다. 정단원으로 레지오 마리애 입단을 신청했다가 그만 거절당했다.
어머니는 교회에 서운한 게 많을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연령회를 열심히 따라다니셨는데, 살만큼 산다는 어느 신도시로 이사 간 뒤 사정이 달라졌다. 너무나도 친절한 자매님들이 어머니를 그리 잘 모실 수 없었다. 장지(葬地)가는 조문버스에 자리가 모자라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집에서 쉬시라는 친절한 인사를 받으며 내려야했다. 어느 날 성당 화장실 청소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비, 걸레와 세숫대야를 이고 신바람 나서 달려갔다가, “할머니는 집에서 쉬세요”라는 어느 자매님의 친절에 그만 기죽어 돌아왔다.
“남들은 밖에서 봉사활동을 하지만, 나는 집안에서 살림살이나 도와야지.”
여든 무렵 어머니는 혼잣말처럼 그리 말씀하고는, 아흔을 넘어선 지금까지 처절하리만큼 치열하게 집안일을 한다. 허리를 다쳐서 서서 할 수 없으니, 벌벌 기어 다니며 방을 쓸고 닦는다. 무거운 그릇 하나 제대로 들 수 없는 그런 힘으로 음식도 만들고 설거지도 하니 여기저기 멍들고 다치기 일쑤다.
그런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린 일 중 하나는 나의 레지오 마리애 입단이다.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고 난 뒤부터는 주회 날 꾸물거리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한말씀 듣는다.
“레지오 안 가니?”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듯, 어머니는 그 헌신적인 삶을 통하여 자식의 신앙생활을 일깨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